이한열 열사가 대중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는 설특선영화로 '1987'이 방영되면서 자연스럽게 이목을 사로잡고 있는 것.
1966년생인 이한열 열사는 연세대학교 재학 중 반 전두환운동에 가담해 1987년 6월9일 시위 참여 중 전경이 쏜 최루탄을 맞고 사망해 6월항쟁과 6.29 선언의 도화선이 된 인물이다.
당시 그는 시위에 참여해 독재 타도와 5.18 진상 규명 등을 외치다 경찰이 수평으로 쏜 최루탄에 머리를 맞아 의식을 잃고 신촌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7월5일 사망했다.
그의 사망을 계기로 1987년 6월10일부터 6월29일까지 약 20일 동안 학생과 시민 등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민주화를 외치며 거리로 몰려나왔다.
이한열 열사가 사경을 헤매자 12일 연세대생들은 '살인적 최루탄 난사에 대한 범연세인 규탄대회'를 시작했고 전국 각 도시로 최루탄발사 규탄시위가 확산됐다.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는 18일을 '최루탄 추방의 날'로 선포하고 최루탄 추방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전국 16개 도시 247곳에서 일제히 시작된 이 대회에는 150만여명의 민중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서울에서는 전경이 무장해제당하고 남대문 경찰서가 돌과 화염병세례를 받았으며 부산에서는 서면에서 부산역에 이르는 약 4km의 간선도로가 시위대에 의해 약 6시간 동안 장악됐다.
시위가 지속적으로 이어지자 결국 전두환 군사정권은 6.29 선언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들이고 성난 민심 앞에 무릎을 꿇었다.
6월항쟁은 전두환 정권 출범 이후 점증된 민주화 열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으로, 제5공화국의 실질적 종말을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항쟁에 참여한 다양한 저항 주체들은 대통령 직선제라는 요구 관철 이후 이해관계에 따라 급속히 해체되는 양상을 보여주기도 했다는 평가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