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처럼 그 정체가 애매한 질환에 걸렸다면 우선 항생제 처방부터 받자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최근 항생제 내성의 위험성이 확실히 밝혀지면서, 의료계는 모든 환자에게 항생제를 처방하던 관행을 버리고 있다. 물론 쉽게 버리지는 못한다.
<영국 의학 저널(British Medical Journal)>에 실린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실시된 항생제 처방 중 아무리 적게 잡아도 1/4이 불필요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 수치를 도출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건강 보험료 청구 데이터를 살펴 어떤 진단을 받은 환자들이 항생제를 처방받는지 알아보았다. 연쇄상구균성 편도선염, 박테리아성 폐렴, 폐 농양 등의 질환은 반드시 항생제 처방을 해야 한다. 그러나 다른 질환은 항생제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부비강염, 폐기종, 하기도 감염 등의 질환들은 증상에 따라 항생제를 써야 할 수도 있는 것들이다. 항생제를 써서는 안 되는 질환도 있다. 상기도 감염, 천식, 알레르기성 비염(비강 염증)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그래도 항생제 처방은 가급적 필요하다는 가정 하에 연구를 진행했기 때문에, 실제로 항생제 처방이 필요 없던 질환 건수는 1/4이 훨씬 넘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총 항생제 처방 건수 15,455,834건 중 23.2%는 항생제가 전혀 필요 없었고, 사용해서는 안 되는 질환에 대한 것이었다. 35.5%는 항생제가 필요할 수도 있는 질환에 대한 것이었다. 12.8%만이 항생제가 없으면 안 되는 질환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것은, 28.5%의 처방이 최근 진단 없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적절한 진단 없이 이루어진 항생제 처방의 실제 건수는 더 높을 수 있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처방 중 34%가 부비강염에 대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지적한다. 기존의 연구에서도 부비강염에 대해 불필요한 항생제 처방이 많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의사들이 항생제를 과잉 처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더욱 복잡한 문제다.
2014년의 어느 연구에 따르면 환자들로부터 항생제를 처방해 달라는 압력을 느낀 의사의 비율은 절반이 좀 넘었다. 또 다른 2014년 연구에 따르면 하루 중에서도 늦은 시간일수록 항생제 처방율이 높다고 한다. 결정 피로가 항생제 과잉 처방의 원인일 수 있다는 얘기다.
2003년의 연구에서는 의사들의 조심성이 원인일 수 있다고 했다. 의사들은 인후염 중에서도 정도가 심한 것일수록 항생제 처방 비율이 높다. 물론 대부분의 인후염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항생제로 잡을 수 없으며, 의사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합병증을 막으려는 의도로 처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과 의사들 중에는 스스로 과도한 항생제 처방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도 있다. 2011년의 어느 연구에 따르면 오랜 의사들 중 94%가 미국에서 항생제가 남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63%는 다른 의사들이 항생제를 과잉 처방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스스로 항생제를 과잉 처방하고 있다고 밝힌 의사는 10%에 불과했다.
이들 중 항생제 과잉 처방 문제에 대한 확답은 없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다른 연구자들이 이 새로운 연구를 통해 확답을 얻기를 바란다. 항생제 과잉 처방 문제는 더욱 심해질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