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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음...뇌가 문제다

  • 기자명 이동훈 기자
  • 입력 2019.11.26 09:41
  • 수정 2019.11.2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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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주 포틀랜드의 항공 교통 관제탑에 있는 사만타 바셋은 항공기 간의 충돌을 막으려고 분주히 일하고 있었다. 20145월의 그날에도 모든 것이 정상인 것 같았다. 레이더에는 항공기의 위치가 나오고, 바셋의 헤드세트에는 새 정보 및 요청이 계속 정신없이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그 때 난데없이 커다란 혼신음이 바셋의 오른쪽 귀를 강타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측음>이라고 부른다. 낙뢰나 기기 고장, 무전 신호 피드백 이상 등으로 벌어질 수 있다. 락 콘서트 장에서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바셋은 헤드세트를 벗은 다음 스피커 모드로 전환, 업무를 계속했다. 어찌되었건 항공기 운항은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시간 내에 바셋은 두통과 메스꺼움에 시달렸다. 그녀는 결국 의사를 찾아가보기로 했다.

그녀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청력도 결과는 정상인 것 같았다. 청력도란 인간의 청각이 다양한 주파수를 잡아내는 능력을 측정하는 검사다. 그녀는 부드럽고 높은 음과 낮은 음, 그리고 그 중간 음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의사는 청력 상실이 없고 정상인 것 같다고 소견을 말했다.

그러나 바셋은 정상이 아니었다. 메스꺼움은 신속히 사라졌지만, 그 다음에도 큰 소음만 들으면 머리가 아팠다. 그녀의 의사소통 방식은 변하기 시작했다. 술집과 식당에서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따라잡을 수가 없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입을 움직이는 게 보이고, 무슨 소리가 나오는 것까지는 알아챘지만 그 내용을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럴 때는 그저 미소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런 경우가 갈수록 많아졌다. 직장에서도 항공 교통량이 크게 늘어나면, 들리는 내용을 해석하느라 온 힘을 기울여야 했다. 예전에는 한번에 3~4명이 떠드는 것도 다 해석할 수 있었다. 항공 교통 관제사는 학습을 통해 그런 능력을 갖추어야 했다. 그러나 이제 그러기는 너무 힘들어졌다.

그 이후로 수년 동안 바셋은 답을 얻고자 여러 전문가들을 만났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발견된 증상인 <숨겨진 난청>을 알게 되었다. 청력의 감퇴 원인으로는 음파 감지 수용기가 손상되어 두뇌로 신호를 전달하지 못하게 되는 것을 꼽는다. 그러나 하버드의 청신경학자 찰스 리버먼과 샤론 쿠자와가 2009년에 발표한 연구 결과는 그동안의 상식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쥐를 사용한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문제가 생기는 부위가 완전히 다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수용기가 아니라, 신호를 전달하는 시냅스에도 이상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리버먼은 이를 가리켜 마이크가 이상 없어도 스테레오 잭에 문제가 있으면 소리가 안 나온다고 비유했다.

이런 손상을 입은 사람은 조용한 상태에서는 소리를 잘 듣는다. 때문에 청력도에서도 이상을 감지해내지 못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대화, 기계 소리, 스피커에서 뿜어져 나오는 음악 등의 소음에 둘러싸이면 제대로 들어야 할 소리를 분간하지 못한다. 이런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은 바셋처럼 단 한 번의 큰 소음에 노출되어서 그럴 수도 있고, 그 보다 낮은 소음(오케스트라 연습, 공학 실험, 잔디깎이 등)에 오랫동안 노출되어서 그럴 수도 있다. 처방약 때문일 수도 있고, 자가면역 질환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20대에, 어떤 사람은 80대에 이런 질환이 나타날 수도 있다. 원인은 다양하지만 증상은 같다. 조용할 때는 잘 듣는데, 시끄러울 때는 못 알아듣는 것이다.

환자의 수, 그리고 원인에 대한 통계는 현재로서는 없다. 의사들도 생존 중인 특정인이 숨겨진 난청 환자라고 단언할 수 없다. 현재로서는 숨겨진 난청 여부를 알아내려면 머리를 쪼개서 내이를 꺼낸 다음, 시냅스의 이상 여부를 확인해야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숨겨진 난청으로 의심되는 환자는 병원에 가도 바셋처럼 아무 이상이 없다는 소리만 계속 듣게 된다. 그래서 쿠자와, 리버먼을 비롯한 여러 국제 연구팀들은 이 질환을 더욱 깊이 연구하고 있다. 이들의 연구 덕택에 생명기술 업계에서는 시냅스를 재생시켜 이 질환을 개선하는 치료책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이 과학적 연구는 매우 조용한 곳에서 살지 않는 모든 현대인에게 중요하다. 현대인은 갈수록 더 큰 소음에 노출되고 있으며, 그 소음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인체에 악영향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7월의 어느 더운 여름날, 쿠자와는 메사추세츠 시각 및 청각 병원의 자기 사무실에 있었다. 이 병원에는 하버드 대학의 교육 병원이 입주해 있다. 쿠자와의 말에 따르면 그 교육 병원은 3층짜리 건물로, 병원의 다른 부분과 썩 잘 이어져 있지는 않다. 그녀는 의사소통 장애에 관한 연구로 2017년에 콜리어 상을 받았다. 그 원통형 트로피는 그녀의 책꽂이에 있다. 다만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낮은 곳에 있다. 창밖으로는 찰스 강이 소리 없이 흐른다. “환자들은 예전에 들렸던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병원에 왔다고 한다. 그러면 청각 질환 의사들은 흔한 검사를 해보고 이상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상이 있기 때문에 병원에 온 게 아닌가.”

연구자들은 예기치 못한 발견을 했다. 귀 속의 음향 수용기를 망가뜨릴 만큼 크지는 않지만, 두뇌의 회로를 망가뜨리는 음향이 있다는 것이다. 리버먼은 이것이 정말 무서운 일이라고 말했다.

쿠자와와 리버먼이 숨겨진 난청을 발견할 때까지는, 누구도 이것이 해당 분야의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올지 몰랐다. 이들의 발견으로 귀의 내부 작용과 청력 상실에 대한 정의는 바뀌었다. 기존의 관점에서는 인간의 귀는 나이가 들수록 소리를 감지하는 능력이 저하될 뿐이었다. 귀에 들어온 소리는 고막을 때리고 작은 뼈들을 진동시킨다. 이 뼈들의 이름은 미국 7학년 과정에서 배운다. 이 작용으로 압력파가 내이 속 달팽이관 내의 액체를 통해 퍼져간다. 이 곳에 사는 모세포의 끝이 압력파로 굽어지면서 전기를 발생시킨다. 이로서 모세포의 반대편 끝에서 신경전달물질이 나온다. 이 신경전달물질이 시냅스를 건너 신경세포로 전달, 더 많은 전기를 일으킨다. 두뇌는 이 전기적 언어를 해석해, 인간의 말소리, 새의 지저귐, 자동차의 경적 소리 등으로 알아듣는 것이다.

이러한 모세포가 사라지면 청력을 확실히 상실하게 된다. 이 때문에 전문의들은 청각 문제 진단을 위해 청력도에 의지하는 것이다. 청력도에서는 다양한 주파수와 음량의 음을 재생한다. 조용한 상황에서라도 여러 옥타브의 음을 들을 수 있으면 정상으로 판정한다. 그러나 리버먼은 청력도가 그리 큰 깊이가 없는 검사라고 지적한다. 그는 이런 비유를 한다. “이건 안과 의사가 시력 검사를 한다면서, ‘시력검사표 맨 아랫줄의 글자가 보이나요?’라고 묻는 대신, ‘벽에 붙은 시력검사표가 보이나요?’라고 묻는 것과 같다.” 눈이 빛을 볼 수 있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그 빛을 문자로 해석할 수 있는지는 묻지 않는 것이다.

자상한 아버지의 이미지를 풍기는 리버먼은 쿠자와가 박사 후 과정부터 그녀와 함께 연구했다. 현재 그의 사무실은 쿠자와의 사무실 근처에 있다. 그의 사무실에는 내이를 그린 해부도 여러 점과, <옛 상사의 유골>이라는 글자가 붙은 병이 있다.

쿠자와는 1990년대 후반 박사 후 과정을 마치고 워싱턴 대학의 교직원으로 채용되었을 때 숨겨진 난청의 징후를 알아챘다. 그녀는 워싱턴 대학에서 1948년부터 시작된 <프레이밍엄 심장 연구>의 데이터를 조사했다.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연구는 심장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참가 의사들은 청력 검사도 실시했다. 그것도 메사추세츠 공장촌의 주민 5,000여명에 대해 수 십 년 동안 실시했다. 쿠자와는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소음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시간이 갈수록 청력이 더 크게 손실된다는 점이다. 과거에 과학자들은 트럭이 역화를 일으키며 옆에서 지나가면 청력에 악영향이 미치지만 곧 회복된다고 생각했다. 하루 이틀은 귀가 좀 멍멍하지만 그 이후에는 당장은 회복된다. 그러나 데이터를 보니 더 큰 문제는 나중으로 미루어지거나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쿠자와는 그 이유를 몰랐다. 그러나 실험은 해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01년 그녀는 메사추세츠 시각 및 청각 병원의 교직원이 되어 리버먼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 2009년 이 두 사람의 연구는 숨겨진 난청을 드디어 밝혀내었다. 연구에 사용된 실험은 간단했다. 쥐에게 100dB의 소음(잔디깎이 정도)2시간 들려주었다. 그리고 수일~수주 후 피험체의 귀를 해부한다. 그러자 예기치 못한 발견을 해냈다. 쥐들의 모세포는 멀쩡했지만 시냅스의 50%가 사라져 있었던 것이다. “신경 연결의 절반이 끊겨 있었다. 정말 무서웠다고 리버먼은 말한다.

그 원리는 이렇다. 소음 중에는 모세포를 없앨만큼 강력하거나 오래 지속되지는 않지만, 뇌와의 연결을 끊을 수 있는 소음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신경 연결은 모세포보다 훨씬 섬세하며, 모세포보다 훨씬 먼저 쉽게 열화된다. 그로부터 2년 후 다른 연구자들은 이 증상을 숨겨진 난청이라고 물렀다. ‘숨겨진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인간의 경우 시냅스의 상태를 쉽게 검사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시냅스의 손실은 표준적인 임상 검사로 알아낼 방법이 없다. 시냅스 연결의 90%를 잃고 난 후에야 의사가 문제를 알아챌 수도 있다. “모세포만 정상적으로 기능한다면 청력도 결과는 정상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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