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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숨겨진 난청 연구

  • 기자명 이동훈 기자
  • 입력 2019.11.26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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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연결망 중 상당 부분을 잃으면, 청각 세포가 탐지한 소리 전체를 해독할 능력이 없게 된다. 연구자들은 쥐, 기니피그, 친칠라, 비인간 영장류를 부검해 숨겨진 난청의 증거를 찾아냈다. 인간의 귀 역시 이 동물들의 것과 비슷하게 동작한다. 그러나 살아 있는 인간의 귀를 부검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인간의 숨겨진 난청 연구는 훨씬 어렵다.

숨겨진 난청의 의미를 모르는 연구자들은 너무나 많다. 이게 얼마나 중대한 문제인지, 발병 빈도가 어느 정도인지, 부검 없이도 그 생물학적 원리를 규명할 방법이 있는지 등이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쿠자와와 리버먼은 동물과 인간에게서 결과를 얻고자 연구 중이다. 죽은 동물에게는 해부학적 접근법을, 산 동물에게는 생리학적 접근법을 사용할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얻은 결과를 바셋 같이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얻은 데이터와 비교할 것이다. 바셋 역시 메사추세츠 시각 및 청각 병원의 연구 프로젝트 중 하나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 40대 초반인 바셋이 이 연구자들을 만나 자신의 증상에 대해 알게 되기까지는 실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건이 발생한 지 1년 정도가 지나자, 당혹한 의사들은 바셋을 메사추세츠 시각 및 청각 병원으로 보냈다. 여기에서조차도 처음에 의사들(리버먼/쿠자와 연구팀 소속은 아니었다)은 예전과 같은 진단을 했다. 그러나 바셋의 증상이 호전되지 않자, 의사들은 더욱 철저한 검사를 실시했다. 바셋의 머리에 전극을 연결하고, 수면 중 듣는 음향에 대한 뇌 활동을 관찰했다. <청각 뇌간 반응 평가>라는 이름의 이 검사를 통해, 뇌의 회백질로 음향을 전달하는 신경 섬유의 작용을 측정할 수 있다. 이는 보통 언어 능력이 떨어져 일반적인 청력도를 실시할 수 없는 유아와 소아에게 많이 사용된다. 이 검사를 실시한 의사들은 비로소 문제를 찾아냈다. 바셋은 아직 청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귀로 들은 것을 해석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 검사 결과와, 생존 중인 환자의 망가진 시냅스 존재 증거를 아직도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연구는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바셋은 자신이 미치지 않은 것을 알았다. 자신이 겪고 있는 질환의 이름도 모르고, 다른 사람들 역시 이런 질환이 있는 줄도 몰랐지만 말이다.

상황은 2019년이 되어서야 바뀌기 시작했다. 의사들이 그녀를 청각 전문의 스테판 메종에게 소개시켜 준 것이다. 메종은 쿠자와, 리버만과 함께 연구하던 사람이었다. 바셋이 자신이 겪는 질환 때문에 화를 내자, 메종은 이해해 주었다. 그 질환에는 이름이 있고,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같은 질환을 앓고 있다는 것이었다. 환자들은 사무직 노동자에서부터 수많은 콘서트를 한 음악가까지 다양했다. 바셋은 회상했다. “메종이야말로 그 질환이 실존함을 믿어준 최초의 사람이었다.”

전극을 사용한 검사는 향후의 진단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그저 검사 결과가 증상과 들어맞을 뿐이다. 데이터의 노이즈 등 여러 변수가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인간의 숨겨진 난청의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인간 귀에 대한 해부와 연구가 필요하다. 리버먼은 이를 진실을 밝히는 작업이라고 부른다. 그의 연구실 카운터 위에 있는 폴더에는 내이 조직의 현미경 슬라이드들이 있다. 이 곳이 보유하고 있는 귀 2,500개의 표본 중 일부다. 그 중 일부는 이 곳에서 치료를 받았던 환자들이 기증한 것이다. 표본들 중 다수는 청력도가 딸려 있다. 과학자들은 이를 보고 환자 생존 시에 청력을 저하시킨 물리적 손상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다.

방의 뒤쪽을 향해 있는 여러 선반에는 영화 속 미친 과학자의 연구실에서도 볼 수 있는 호박색 액체가 들어있는 표본병이 있다. 병 안에는 측두골이 하나씩 있고, 측두골 안에는 달팽이관이 들어 있다. 마치 액체 속의 소리를 듣기라도 하듯이 플라스틱 블록을 매달고 있다.

이런 표본들은 산 사람에게서 얻기가 불가능하다. 리버먼은 이런 표본들을 가지고 다양한 단백질로 이루어진 특정 유형의 세포들을 염색할 수 있었다. 그 다음 세포에 빛을 비추고, 무지개색으로 빛나는 세포를 관찰했다. 이를 통해 환자의 뉴런 연결 상태와 모세포를 관찰할 수 있다. 모세포는 마치 작은 자주색 치아처럼 늘어서 있다. 그리고 모세포가 빠진 부위는 검은색 점으로 보인다. 청신경의 끝은 녹색 해파리처럼 보인다. 신경 세포 주변을 둘러싼 껍질은 감초와 같은 빨간색이다. 마치 색칠 놀이와도 같은 과학 연구였다. 살아있는 사람을 가지고 실험이 가능했다면 이렇게 복잡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근 연구는 귀 보호의 중요성에 방점을 찍는 것 같다. 그것도 젊을 때부터 말이다. 늙어서 나타나는 청력 손실의 일부는 젊었을 때 트럭 옆에 너무 오래 서 있었기 때문이었을 수 있다.

리버먼과 쿠자와는 죽은 인간과 동물을 부검해 얻은 지식과 살아있는 환자의 청각 및 두뇌 검사 결과를 결합시켜 숨겨진 난청 진단법을 개발하고, 이 질환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켜 치료법을 알아내기를 바라고 있다. 또한 숨겨진 난청의 원인을 특정하여 언젠가는 이 질환을 더 잘 예방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사고 이전 바셋의 청력은 지극히 뛰어났다. 그녀는 17세 때부터 공항에서 일했다. 그녀가 처음 한 일은 전화 응대였다. 이후 그녀는 활주로에 나가서 야생동물을 쫓아내기도 하고, 연료 트럭을 운전하기도 하고, 항공기를 주기시키기도 했다. “예전에 모시던 상사 중에는 나를 자식처럼 아끼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끊임없이 이렇게 주문했다. ‘어딜 가든지 반드시 귀마개를 해라.’” 덕분에 그녀는 콘서트에 갈 때도 귀마개를 했다.

연구에 따르면 일상 속의 평범한 소리에 대해서도 귀를 보호해야 하는 것 같다. 심지어는 젊고 건강할 때조차도 말이다. 리버먼과 메종은 최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피험자 중 35%가 귀마개를 사용하고 있었다(주로 의대 청각학 전공자). 나머지 65%는 귀마개를 잘 사용하지 않았다(주로 보스턴 시내 대학의 음대생들). “이들 중 다수는 귀를 정말로 혹사하고 있었다고 리버먼은 말한다.

두 피험군에게 표준 청력도를 적용했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바셋과 비슷한 검사 방법으로 피험자들의 뇌를 조사해 본 결과 음대생들은 달팽이관 뉴런에서 받아들이는 신호보다 모세포에서 받아들이는 신호가 더 많았다. , 신호의 일부가 샌다는 것이었다. 이런 피험자들은 배경 소음이나 에코가 깔린 곳에서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말을 좀 빠르게 해도 잘 알아듣지 못했다.

이것은 소규모 예비 연구다. 그러나 리버먼과 메종은 더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오랜 시간에 따른 청력 변화를 조사할 계획이다. 리버먼은 장기간에 걸친 청력 약화에는 노화 외에도 다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중에는 소음도 있다. “인간은 적막한 자연 속에서 진화해 왔지 기계들이 만들어내는 소음에 적응하도록 진화해 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현대인의 청력 저하의 원인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지난 1960년대 초 수단 부족민들과 도시인들을 대상으로 한 신체 능력 비교 연구가 있다. 그 연구 결과 역시 리버먼의 가설을 지지하고 있다. 시력은 나이가 들수록 원시가 되어가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청력 역시 나이 때문에 저하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소음 때문에 저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숨겨진 난청의 원인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미시건 대학의 크레스지 청력 연구소의 신경과학자인 가브리엘 코파스는 리버먼과 협업하는 동료다. 그는 시냅스의 능력 저하 외에도 다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숨겨진 난청을 일으키는 원인이 둘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쥐의 귀 뉴런을 감싸는 미엘린이 소실되면 시냅스에 이상이 없어도 숨겨진 난청 증상을 일으킨다고 한다. 그는 식중독에 연관된 길랑 바레 증후군 등의 자가면역 장애, 또는 인플루엔자, 간염, 지카 바이러스 등이 미엘린을 소실시켜, 숨겨진 난청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론을 주장했다.

달라스 소재 콜리어 의사소통 장애 센터(쿠자와에게 상을 준 기관이다)의 콜린 르 프렐의 시각은 좀 더 깊다. 청력 손실 예방을 주로 연구해 온 르 프렐은 오락 활동의 소음이 청력에 영향을 끼친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녀는 20대 성인을 대상으로 소음에 노출되는 시간과 그 음량을 조사했다. 그리고 시간에 따른 이들의 청력과 음성 언어 인지 능력 변화를 조사했다. 시끄러운 오락 장소에 많이 간 피험자일지라도 영구적인 청력 손실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것이 르 프렐의 연구 결과이다. 그녀는 모세포가 흔들리면서 생기는 소음, 피험자가 조용한 환경과 시끄러운 환경에서 음성 언어를 인지하는 능력, 귀 내부의 전기 신호 등을 모두 조사했다. 소음 환경에 노출된 정도를 정확히 측정했다면, 피험자들은 아무 이상이 없어 보였다.

한편 칼리지 런던 대학 연구팀은 메사추세츠 시각 및 청각 병원과 함께 진단 검사를 개발하고 있다. 그리고 이 진단 검사를 숨겨진 난청에 대한 초기 검사로 활용할 수 있는지 조사하고 있다. 말하기 및 듣기 전문 과학자인 팀 슈프에 따르면, 이 연구팀은 전극을 사용한 검사 방법은 물론, 배경 소음이 있는 곳에서 피험자가 특정 음향을 인식하는 능력을 측정하는 검사 방법을 사용한다고 한다. 이를 통해 소음을 싫어하는 젊은이들과 소음에 자주 노출되는 45세 이상 중장년층을 비교한다는 것이다. 피험자는 음악가, 사격 애호가, 모터스포츠 애호가들 중에서 지원을 받았다.

하버드에서 쿠자와는 연구에 참여했던 피험자들로부터 이메일을 계속 받고 있다. 그 이메일이야말로 쿠자와의 힘의 원천이다. “그들은 자신의 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 답을 찾으려고 하고 있다. 우리가 그동안 준 답이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연구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일부 기업들이 치료법을 연구하고 있다. 그 기업들에는 쿠자와, 리버먼과 함께 연구를 했던 과학자들도 재직하고 있다. 치료법 중에는 뉴런 시냅스를 재생시키는 뉴로토핀 같은 화학 약품도 있다. 모세포가 정상이고 뇌와의 연결이 재생된다면 청력을 회복할 수 있다.

바셋은 치료를 받지 못해도 자신의 증세를 충분히 이해하고 자각함으로서 삶을 개선할 수 있었다.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아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다.”

학계에서는 우리를 이렇게 맹비판할 것이다. ‘살면서 큰 소리 한 번쯤 안 듣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라고 쿠자와는 말한다. 미국 직업 안전 보건국은 작업장의 소음 안전 한도 및 안전장치가 필요한 소음 상황을 규정해놓고 있다. 소음 한도에서는 소음의 지속 시간, 음량, 주파수 등이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은 모세포 손실 조건에 근거한 것이다. 쿠자와와 리버먼은 시냅스에 위험한 수준의 소음이 어떤 것인지 아직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리버먼은 잔디깎이를 사용할 때 귀마개를 한다. 슈프는 길을 가다가 앰블런스가 지나가면 귀를 막는다. 그러나 그 정도의 소음에도 귀를 보호하라는 대중 캠페인은 아직 실시된 바 없다. 물론 앞으로는 해야 할 것이다. <청력에 좋지 않은 너무 큰 소음>에 대한 정의는 빠르고 확실하게 나오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연구자들이 귀의 숨은 약점에 대해 더 잘 알아야 그 정의가 나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청력은 늙어서나 손실되는 게 아님을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

바셋이 당한 것 같은 사고는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숨겨진 난청은 막을 방법이 없다. 앞으로 활주로, 공장, 콘서트 장, 심지어는 파티장에서도 귀마개를 하는 것이 권장된다면, 청력을 잃어서 고개를 끄덕이고 웃기만 하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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