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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바이올린'스트라디바리우스'...영원히 간직하라

  • 기자명 장순관 기자
  • 입력 2019.12.02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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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 전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디가 만든 걸작 바이올린. 하지만 그 바이올린도 영원히 소리를 낼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박물관에서 그 감미로운 소리를 디지털로 변환, 후세에 영원히 남기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탈리아 크레모나의 <바이올린 박물관>의 콘서트 홀, 안토니오 데 로렌치가 무대 위에 앉아 바이올린을 조심스럽게 연주하고 있었다. 그 바이올린은 다름 아닌 <스트라디바리우스>였다. 1727년에 만들어진 이 바이올린은 <베수비오>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이 바이올린은 은은한 무대 조명을 받아 붉게 빛나고 있었다. 데 로렌치가 귀에 낀 이어폰을 통해 메트로놈 박자가 들려왔다. 그리고 누군가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시작!”

데 로렌치는 활을 가장 낮은 현에 갖다 대고, G음을 반 박자 연주했다. 그리고 나서 멈췄다가 내림 A, A음을 연주했다. 점차 음고를 높여갔지만 4개의 현을 연주하는 동안 연주 속도를 한결 같이 유지했다. 끝낸 다음에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이번에는 각 음을 한 박자 더 빠르게 연주했다.

분명 이는 평범한 콘서트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연주자 개인 연습도 아니었다. 밖에서는 경찰이 교통을 통제하고 있었다. 안에서는 박물관 직원들이 모든 난방을 끄고, 조명 조도를 낮추고, 소음을 발생시키는 전구는 모두 제거했다. 콘서트장 전체에 설치된 마이크로폰 32대가 울려 퍼지는 한 음 한 음을 소리 없이 듣고 있었다.

데 로렌치의 연주는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소리를 보존하기 위한 캠페인의 일환이었다. 이 마을에서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와 그의 아들들은 약 1,100점의 현악기를 만들었다. 그 중 상당수가 300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 보존되어 있다. 그러나 앞으로도 영원히 보존될 거라는 보증은 없다. 이 중 약 절반이 사고, 부적절한 수리, 노후에 따른 마모로 소실되었다. 현재 남은 650점의 악기들 중에도 일부는 너무 노후 되어 연주가 불가능해졌다. 목재와 결합 부위가 너무 약해져 현의 장력과 활의 압력을 버틸 수 없게 된 것이다. 아직 사용이 가능한 악기들 역시 처음에 제조되었을 때와는 소리가 달라졌다. 노후와 진동 때문이다.

패션계의 샤넬, 자동차계의 페라리가 그렇듯이, 스트라디바리는 바이올린 제작의 거장으로 남아 있다. 그는 왕과 추기경들을 위해 악기를 제조했다. 이츠하크 펄먼, 안네 소피 무터 등의 현대 음악가들도 그의 악기를 들고 연주했다. 음악가들, 현악기 제조자들, 과학자들은 수 십 년에 걸쳐 그 아름다운 소리의 비밀을 알아내고자 했으나, 여태까지 누구도 스트라디바리의 제품과 똑같은 것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스트라디바리우스가 못쓰게 되더라도 그 소리를 오래도록 보존할 디지털 자료실을 만들게 되었다. 그런 것이 있다면 작곡가들과 음악가들은 언제까지나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소리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데 로렌치의 연주는 계속되었다. 다양한 음계를 넘나들며 템포와 강도, 음량을 필요한 만큼 정확히 바꿔 가면서 연주했다. 마치 드보르작 심포니, 베르디 오페라 곡을 연주하는 것 같은 열정이었다. 콘서트 홀의 좌석 아래에는 좁은 방음실이 있었다. 그 속에는 음향공학자 토마스 코리트케가 있었다. 그가 속한 회사는 스트라디바리우스의 가상 버전을 만들 것이다. 코리트케는 컴퓨터가 연주를 녹음하는 동안 스피커를 통해 연주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는 이 일을 앞으로 5주간 매일 해야 한다. 베수비오와, 같은 시대에 만들어진 명기 3점이 만들어내는 수천 가지의 음색을 모두 꼼꼼히 문서화해야 한다.

박물관 측은 이 힘든 작업을 통해 이 악기들이 영생을 얻어 후대를 계속 매혹시키기를 바라고 있다. 박물관 학예사 파우스토 카치아토리는 이렇게 말한다. “이 악기들은 지난 300년 동안 연주되어 왔다. 우리는 이 소리를 앞으로 300년 이상 더 들려주고 싶다.”

<바이올린 박물관>은 지난 2013년 스트라디바리 및 여러 명기들을 기념하기 위해, 고도 크레모나의 중심부에 세워졌다. 밀라노에서 1시간 거리인 이 도시는 기원전 218년 로마 제국의 식민지로서 도시 기능을 시작했다. 이후 스페인, 프랑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순서대로 주인이 바뀌면서 풍부하고 국제적인 문화를 키워 나가게 되었다. 17세기 이 도시에서는 악기 장인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게 되었고, 현재도 250명의 악기 장인이 살고 있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1500년대 이 도시에서 살던 악기 장인 안드레아 아마티가 근대적인 바이올린을 고안해냈다고 한다. 그러나 3가지 기술 혁신을 통해 바이올린을 바로크 시대의 실내에서 고전주의 시대의 콘서트 홀로 끌고 나온 것은 1644년경에 출생했다고 추정되는 스트라디바리였다. 우선 스트라디바리는 바이올린을 당대 다른 사람의 제품보다 좀 더 크게 만들었다. 그리고 <벨리>라 불리우는 상판의 곡선을 없애 평평하게 했다. 피스도 다른 제품보다는 가볍게 했다. 바이올린의 몸체에는 F자형 구멍이 나 있는데, 이 구멍은 벨리를 자유롭게 진동시키고, 악기 내외부의 공기를 공진, 음악 소리로 만들어 발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스트라디바리는 이 구멍의 길이도 늘렸다. 이러한 개량을 통해 바이올린의 소리는 더욱 강해졌다. 카치아토리는 그는 당대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원하던 것이 무엇인지를 완벽히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현악기의 소리를 근본적으로 좌우하는 건 소재다. 아마티 시대 바이올린 장인들은 바이올린 벨리의 재료로는 가문비나무가 최고라고 생각했다. 나뭇결 덕택에 현의 장력을 버틸 수 있으면서도 유연해서 잘 진동하기 때문이다. 제일 품질 좋은 가문비나무는 알프스 산맥에서 난다. 날씨가 춥기 때문에 식물이 빨리 자라지 않는데, 이 때문에 나뭇결이 촘촘해지고 공진 효과가 극대화된다. 크레모나의 바이올린 제작 학원 <아카데미아 크레모넨시스>의 공동 창립자 마시모 루치는 나무의 효과를 알고 잘 고르면, 이미 좋은 바이올린이 만들어진 거나 다름 없다.”고까지 말한다. 악기 장인들은 바디와 넥의 소재로는 단풍나무를 선호했다. 강도와 공진성, 질감이 다 좋았기 때문이다.

박물관 학예사 파우스토 카치아토리는 이렇게 말한다. “이 악기들은 지난 300년동안 연주되어 왔다. 우리는 이 소리를 앞으로 300년 이상 더 들려주고 싶다.”

나무의 중요성을 감안한다면,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소리의 비밀을 나무에서 찾으려는 것도 이상할 게 없다. 스트라디바리가 사용된 목재는 북부 이탈리아 백운암 알프스의 발 디 피에메 숲에서 얻은 것이다. 지난 2003년 연구자들은 유독 추웠던 때에 성장한 나무로 바이올린을 만든 것이 명기의 비결이라는 가설을 발표했다. 1645년부터 70년 동안 유럽과 북미의 평균 기온은 다른 때에 비해 섭씨 1도가 낮았다. 마운더 극소기라 불리운 이 시기에 느리게 성장한 나무들은 조직 밀도가 높고 나뭇결 무늬도 빽빽하다. 때문에 스트라디바리의 악기들의 공진 성능이 더욱 우수했을 거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 메디컬 센터의 어느 방사선 전문의도 이 가설을 지난 2008년에 지지했다. 그는 스트라디바리의 악기 2점과, 쥬세페 과르네리(스트라디바리의 친구)의 악기 3, 현대 악기 8점을 가지고 CT 스캔을 했다. 그 결과 과거 거장들의 악기가 좀 더 고른 나뭇결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텍사스 A&M 대학에서 은퇴한 생화학자 조셉 나기배리는 그런 주장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는 당대 유럽 대륙의 다른 모든 악기 장인들도 똑같은 나무를 썼지 않았겠냐며 반박한다. 그러나 그들 중 스트라디바리에 비길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던 것이다.

나기배리도 직접 바이올린을 만드는 악기 장인이다. 그는 스트라디바리의 비밀을 40년 동안 연구해 왔다. 그는 전자 현미경, 적외선 분광술 등의 기법을 통해 관찰한 결과를 토대로, 여러 가지 다른 물질들이 목재 구조에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크레모나의 악기 장인들이 붕산염, 구리염, 철염, 크롬염 등을 사용해 나무좀을 예방했을 거라고 보고 있다. 이 성분들 중 일부가 나무속의 다당류와 결합해 나무의 강도와 공진성을 높였을 거라는 것이다. 그는 스트라디바디가 나무를 굴뚝에서 훈연하는 과정도 거쳤을 거라고 보고 있다. 이를 통해 해충을 제거할 뿐 아니라, 나무의 습기를 제거해 악기의 음질을 개선했다는 것이다. 나기배리는 화학 처리를 통해 나무를 장기간 보존하고 재구성하지 않으면 스트라디바리같은 소리를 낼 수 없다고 말한다.

국립대만대학의 화학자 환 칭 타이가 이끄는 연구팀도 2017년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나기배리의 주장을 지지했다. 이 연구팀은 여러 스트라디바리 악기에서 수리 중에 나온 단풍나무 파편을 조사했다. 이 파편들을 플라즈마로 이온화하고 그 과정에서 나온 원자를 분석하자 나기배리가 언급한 여러 가지 성분들이 나왔다.

화학자들은 스트라디바리가 1690년대부터 사용한 붉은색 바니시도 조사했다. 과거 연구자들은 이 바니시는 멕시코산 연지벌레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연지벌레 자체는 물론 연지벌레의 알까, 그리고 몰약과 호박을 첨가하여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트라디바리우스 악기 5점을 분석한 프랑스 화학자 장 필립 이샤르에 따르면 그런 물질들은 나오지 않았다. 그 바니시는 당대의 악기 장인들이 널리 사용하던 흔한 것이었다.

이 모든 추측이 생긴 것은 스트라디바리가 제작 방법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제작 방법이나 자신만의 비결에 대한 기록을 일절 남기지 않았다. 물론 과학을 통해 증거를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스트라디바리의 제작 방법을 완벽히 재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대체로 회의적이다. 제작 방법에 대한 기록이 없는 상태에서 남은 것은 악기가 내는 소리 뿐이다. 20192월의 어느 날 제어실에 있던 코리트케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의 정체를 파악하는 데는 약간 시간이 걸렸다. 박물관의 비싼 악기들을 24시간 지키는 무장 경비원이 졸면서 내는 코 고는 소리였다. 코리트케는 친절한 말로 경비원을 깨웠다. 두 사람 모두 한참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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