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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디바리우스 사운드 뱅크(2)

  • 기자명 장순관 기자
  • 입력 2019.12.02 13:35
  • 수정 2019.12.02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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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트케가 진행하는 이번 프로젝트의 이름은 <스트라디바리우스 사운드 뱅크>다. 5년 전 음향공학자 레오나르도 테데스키와 협력해 시작되었다. DJ 출신이던 테데스키는 코리트케의 회사에서 만든 전자 악기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사용해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프로그램은 11피스 현 앙상블을 재현할 수 있었다. 테데스키는 이 프로그램을 사용해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그는 이 프로그램과 유사한 것을 사용해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의 소리를 재현하고자 했다. 그는 누구도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소리 표본을 자세히 녹음한 적이 없다는 것을 알고 놀랐기 때문이다. 그는 이 아이디어를 코리트케에게 말했다. 비전자음악의 애호가였던 코리트케는 그의 말을 듣고, 두 번 다시 나오지 않을 이 걸작품들의 소리를 영구 보존할 가능성을 발견했다.

박물관의 콘서트 홀은 이상적인 작업 공간이었다. 콘서트 홀의 설계자는 현악기의 음향이 완벽히 반향하도록 최적의 실내형상과 크기로 설계했기 때문이다. 코리트케도 이 콘서트 홀이 작업실로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변 소음이 신경 쓰였다. 그래서 시 당국의 협조를 얻어낸 다음에야 일을 진행했다.

코리트케는 애당초 바이올린 독주만 녹음하려고 했다. 그러나 박물관 직원들과의 논의 끝에 4중주를 녹음하기로 했다. <베수비오> 외에도 과르네리가 만든 바이올린 <프린스 도리아>, 아마티가 만든 비올라 <슈타우퍼>, 스트라디바리가 만든 첼로 <슈타우퍼>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의 팀은 3년의 시간을 들여 작업을 기획하고, 당시의 악기가 낼 수 있는 수천 가지의 음을 미리 파악했다. 그래야 그 음을 연주하고 데이터베이스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코리트케는 “우선 모든 것을 종이 악보로 써 봐야 한다. 정말 힘든 일이었다. 어떤 음악가도 해 보지 않은 일이었다”고 말한다.

코리트케의 팀원들은 녹음 장비를 설치하느라 하루를 보내고, 마이크 배열을 정하느라 또 3일을 보냈다. “매우 좁은 곳에 다수의 마이크를 설치하는 것이라, 기존에 해본 어떤 작업과도 달랐다”고 그는 말했다. 음악가들은 각 단계마다 다양한 음계와 화음을 다양한 음량과 템포로 연주했다. 음 하나마다 수십 가지의 음조를 재현한 것이다. 이들은 하루에 며칠씩 이 작업을 반복했다. 또한 다양한 활 사용법과 현 뜯는 방법을 시도하면서 대단히 정밀하게 수천 가지의 조바꿈을 연주했다. “어떤 때는 우리가 보기에는 만족 스러운데 음악가들이 연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면서 다시 하겠다고 했다.”

이들의 작업은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음 때문에 때때로 방해되었다. 물론 시청에서 콘서트 홀 인근 도로 2군데와 주차장 1군데를 폐쇄했지만, 석조 포도 위를 달리는 자전거 소리라던가, 개가 짖는 소리라던가, 박물관 부속 카페에서 컵이 부딪치는 소리 등은 작업 내내 들려왔다. 시장은 7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에게 정숙을 요구했지만, 그래도 교회 종소리나 비행기의 비행음 같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 작업이 완료될 무렵 코리트케는 음향 파일 100만 개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용량으로 따지면 8테라바이트이다. 그의 팀은 이것들 중에 좋은 것을 골라 프로 툴스 같은 기존 레코딩 프로그램에 추가할 수 있는 파일로 가공할 것이다. 즉 가장 음악적이고 정확한 음을 고른다는 얘기다. 2020년 상반기는 되어야 작업이 끝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을 들어보고 그 상성을 알아야 한다. G음과 올림 G음, C음과 올림 C음 간의 조화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테데스키는 음악가들이 디지털화된 명품 악기들로 만들어낼 작품들에 매우 기대가 크다. 이들이 만들 소프트웨어는 2020년 중반에 시판될 것이다. 새로운 청중들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명품 악기들을 선보이게 될 것이다. “스크릴렉스도 전자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으로 멋진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다. 실로 다양한 장르에서 명품 악기들이 활약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과연 이게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소리임을 누가 알아챌 것인가?

어떤 복제품도 원본만큼 좋은 소리를 낼 수는 없다는 것이 <스트라디바리우스 사운드 뱅크>가 성립하기 위한 대전제다. 조셉 커틴은 그 대전제가 언제나 참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는 10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연주했으며, 20살이 되던 1978년부터는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다른 많은 악기 장인들처럼 그 역시 스트라디바리와 그 동료들에게 지속적인 환상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명기들의 소리를 재현하고 싶었다. 오랫동안 커틴은 스트라디바리가 뛰어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여러 이론을 고안해 나갔다. 그러다가 어느 물리학자 친구가 스트라디바리가 압도적으로 뛰어나다는 점부터 우선 증명이 되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오래된 이탈리아 명품 악기들이 현대 악기보다 더욱 뛰어다나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는 점을 말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커틴과 클라우디아 프리츠는 이중 맹검 연구를 실시했다. 프리츠는 파리 소르본 대학의 심리 음향학 연구자다. 2010년, 국제 경연대회를 위해 인디애나폴리스에 온 21명의 연주자들에게 짙은 색 용접용 고글을 착용시킨 후, 전원에게 각각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 2점, 과르네리 바이올린 1점, 현대 바이올린 3점을 연주토록 했다. 이 중 13명이 현대 바이올린의 소리가 더 좋다고 답했다. 스트라디바리우스가 더 좋다고 답한 인원은 7명 뿐이었다.

그러나 그 연구는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비판을 들었다. 검사의 일부는 호텔에서 진행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두 연구자는 2012년 파리에서 더욱 철저한 연구를 실시했다. 이번에는 이탈리아 거장이 만든 바이올린 6점(이 중 5점이 스트라디바리우스), 현대 바이올린 6점이 사용되었다. 현대 바이올린은 일부러 야외에 방치해 외관을 노후시켰다. 그리고 10명의 프로 연주자들을 블러 고글로 눈을 가린 후 연주를 시켰다. 모든 연주자들은 본인이 사용하던 활을 실험 중에도 계속 사용했고, 실험은 75분간 리허설 구역과 작은 콘서트 홀에서 진행되었다. 이 중 6명이 현대 바이올린의 소리를 선호했다. 평균적으로 볼 때 음악가들은 연주성, 음의 명료성, 전달력이 뛰어난 현대 바이올린을 선호했다. 그리고 이 음악가들 중 소리만으로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알아본 사람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커틴은 “음악가들이 오래된 악기와 현대 악기를 구분할 수 있는지조차도 아직 확실히 규명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물론 그렇다고 스트라디바리 바이올린의 품질이 나쁘다거나, 그가 바이올린 제작에 들인 공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커틴은 “나는 그의 작품에 무한한 경의를 품고 있다. 다만 그 작품들이 현대 악기들보다 무조건 좋은 소리를 낸다는 전제에 의문을 품고 있을 따름이다.”

음향 공학자 토마스 코리트케는 “전 세계의 모든 박물관은 소장품의 디지털화를 기본적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명품 악기들은 거기에서 예외인가?”라고 묻는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핵심을 놓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특이한 소리와 역사적 중요성 때문에 보존의 가치를 얻었다. 그러나 전 세계의 학술 단체와 기록 보관인들은 이미 그림, 조각, 문서(영국 <마그나 카르타>나 미국 헌법 등)를 보존하고 있다. 이번 녹음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람들은 소리 역시 그러한 보존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음향 공학자 토마스 코리트케는 “전 세계의 모든 박물관은 소장품의 디지털화를 기본적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명품 악기들은 거기에서 예외인가? 기존의 통념에서 생각을 약간만 바꾸면 소리도 보존의 대상으로 여길 수 있다. 우리 프로젝트는 그를 위한 문을 여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언젠가 박물관들이 <스트라디바리우스 사운드 뱅크> 같은 도구를 사용하여 관람객들에게 과거의 명기의 소리를 들려주기를 바란다. 그는 유럽 대성당들의 파이프 오르간 소리도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믿고 있다. 또한 윌리 넬슨의 찌그러진 어쿠스틱 기타인 <트리거>의 소리 역시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테데스키는 비요크나 마틴 몰린 등 전위적인 음악가들의 악기 연주도 녹음하고 싶어 한다. 코리트케의 말이다. “이 세상에는 디지털화하면 좋은 유명한 악기들이 얼마든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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