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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소음 과학으로 풀다(2)

  • 기자명 김성진 기자
  • 입력 2019.12.11 15:28
  • 수정 2019.12.11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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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소음에 관한 과학적 연구가 시작 되었다/사진:파퓰러사이언스 제공

버클리 평지에 자리 잡은 <마이어 사운드> 사의 시설은 점점 확장되고 있다. 그 곳은 한 때 케첩 공장이었다. 나지막한 사각형 블록 안에는 붉은 색 기와지붕을 한 콘크리트 건물들이 서 있다. 큰 공장 안에 들어가면 스피커 및 기타 음향 구성품을 조립하는 공간이 있고, 그 한복판에 흰색과 회색의 작은 방음실이 있다. 그 곳은 이 회사의 극소수 고위직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하는 연구실이다.

어느 날 아침 존 마이어는 구겨진 파란색 체크무늬 셔츠와 갈색 바지를 입은 채 그 방 한복판에 앉아 있었다. 금테 안경과 다듬지 않은 회색 턱수염을 한 그의 눈은 사시였다. 그 눈으로 벽에 설치된 스피커와 매달린 마이크로폰을 보는 그의 모습은 왠지 산만해 보였다. 그 장비들은 컴퓨터 제어식 신호 처리기에 연결되어 있었다. 그 신호 처리기는 녹음되는 소리들을 모두 분리하여(물을 따르는 소리나 웃음소리 같은 것도 구분할 수 있다), 그 음량과 반향, 위치를 바꾼 다음 다시 내보낼 수 있다.

선임 과학자 로저 슈웽크가 근처의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슈웽크는 이 회사에서 만드는 시스템의 음향효과를 예측하고 측정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 관찰했던 가장 시끄러웠던 장소인 버클리 피자집의 소음 파일을 꺼냈다. 마우스 몇 번을 클릭하자 대화와 음악이 뒤범벅이 되어 알아들을 수 없던 소음은, 클래식 록음악과 피자 토핑에 대한 토론으로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식당의 소음은 최대 85데시벨에 달했다. 전동 공구의 소음 수준이다. 미국 미식가들이라면 드물지 않게 경험하는 수준이었다. 식당이 시끄러워진 것은 1990년대부터였다. 우선 그 시기부터 경영자들이 근대적, 산업적 느낌을 주는 인테리어를 선호하게 되었다. 카페트, 목제 가구, 커튼은 엄청난 소음 흡수 효과가 있는데도 쓸데없이 자리만 차지한다고 싫어하게 되었다. 대신 높은 천정, 아무 것도 깔리지 않은 맨바닥, 단단하고 소음을 반사시키는 소재(콘크리트, 타일, 금속, 시멘트, 유리 등)로 만들어진 가구와 벽이 인기를 얻게 되었다. 이렇게 하면 소음이 반사될 수밖에 없다.

또한 식당에 개방형 조리실과 바를 설치하고, 음악을 크게 틀었다. 미국 음향학회(ASA) 전 회장이자 건축 음향 전문가인 릴리 왕에 따르면, 이런 짓을 하면서 음향학적 고려까지 해 본 건물주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미국 음향학회는 보청기에서부터 교실 소음까지 음향에 관한 모든 것의 표준을 연구 개발하고 있다. 릴리 왕은 건축가들은 건물에서 음향을 다루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들은 건물을 시각적이고 공간적으로 다루는 법만 알 뿐이다고 말한다. ASA는 식당의 소음 기준을 정하는 작업에 막 착수한 상태이며, 거기에는 왕도 참여하고 있다.

게다가 적절한 소음은 식당에도 이익이 되는 것 같다. 마케팅 연구에 따르면 고객들은 활기가 느껴지는 배경 소음이 있는 식당을 좋아한다. 소음이 커질수록 술을 마시는 양도 늘어나고 식사를 하는 속도도 빨라진다. 따라서 테이블 회전률이 높아지고 매출도 올라간다. 하지만 다른 연구에 따르면 소음이 커질수록 미뢰가 둔감해진다고 한다. 때문에 튀김류 등 건강에 좋지 않은 메뉴를 고를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소음은 또 다른 문제도 불러일으킨다. 음식과 음료수가 나올 때는 필연적으로 소음이 생긴다. 주변이 시끄러워지면 손님들은 이야기를 할 때 무의식적으로 목소리를 높인다. 음향 업계에서는 이러한 행동방식을 가리켜 롬바르드 효과라고 한다. 이는 소음 증가의 악순환을 일으킬 수 있다. 롬바르드 효과가 일어나는 소음이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과학적 조사는 아직 없다. 그러나 2018년 가상의 식당 환경을 대상으로 한 어느 연구에 따르면, 소음이 57데시벨을 넘어가면 손님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다고 한다.

<마이어 사운드>의 선임 과학자 슈웽크에 따르면, 옆 사람의 말은 잘 알아들을 수 있는데 멀리 떨어진 사람의 말은 잘 알아들을 수 없을 때면, 자신의 말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거라는 걱정을 덜 하게 된다. 따라서 롬바르드 효과를 일으킬 확률도 떨어지게 된다. 따라서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끼리의 대화는 잘 들리게 하면서도 다른 테이블의 말소리는 잘 안 들리도록 <콘스텔레이션>을 적절히 조정하는 것이 과제다.

마이어는 거기에 대해 알려면 엄청나게 많은 실험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다음 이들은 <코말>에서 녹음한 소음을 재생했다. <코말>의 점주 존 팔루스카는 요식업자 치고는 특이한 사람이었다. 음악 밴드 <피쉬>의 매니저 출신인 그는 2012<코말>을 개업하기 이전부터 음향에 대해 많이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적절한 소음을 통해 식당의 분위기를 변화 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동시에 소음이 지나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바 주변은 즐거운 소음이 나지만 홀의 언저리 부분은 조용하게 하고도 싶었다.

팔루스카의 식당 건축을 맡은 건축설계사는 <마이어 사운드>를 소개해 주었다. 그 건축설계사는 헬렌 마이어와 같은 학부모 위원회 소속이었기 때문이다. 헬렌은 팔루스카에게 소음 흡수 패널을 보여주고, 음악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헬렌은 <콘스텔레이션>의 시연도 보여주었다. 그 때까지 <콘스텔레이션>은 콘서트홀의 음향 개선을 위해서만 쓰이고 있었다. 플루트나 바이올린 같은 악기의 고주파 음향은 관중석 맨 뒷자리까지 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콘스텔레이션>은 잔향을 기가 막히게 조정해 재분배하는 시스템이다. 인간이 듣는 잔향은 음원에서 나온 음파가 다른 물체의 표면에서 반사된 것이다. 잔향을 흡수하면 음이 늘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반대로 디지털 기술을 사용해 잔향의 수명을 몇 초 정도 늘리면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공간을 없앨 수 있다. 헬렌은 이를 두고 보이지 않는 건축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콘스텔레이션>을 식당에 적용하기란 훨씬 더 까다로웠다. 식당의 소음은 무대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식당의 모든 곳에서 다 나온다. 그리고 식당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같은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것도 아니다. 때문에 <마이어 사운드> 팀은 우선 식당의 소음을 가급적 낮추었다. 그러고 나서야 <콘스텔레이션> 시스템은 조리실과 옆 테이블에서 나는 소음을 정밀 조정하여, 손님들이 자기 테이블의 대화를 들을 수 있다.

팔루스카는 기꺼이 자기 가게에 자가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코말>은 원래 내장이 싹 철거된 버클리의 가게였다. <마이어 사운드> 팀은 가급적 모든 곳에 소음 감소 처리를 했다. 노출된 더글러스 전나무 대들보 사이에는 두께 5cm의 무광 검정 유리섬유 방음재를 댔다. 그리고 나무와 유리섬유로 이루어진 이 방음재를 삼베 내장재로 가렸다. 그리고 음향 다공성 직물 위에 추상화와 오악사카 거리 풍경 사진 등을 커다랗게 인쇄한 다음 음향 흡수재가 든 알루미늄 틀 위에 얹었다. <마이어 사운드> 팀은 이 독특한 제품을 마이어 패널이라고 부른다.

그 다음에는 28개의 마이크로폰과 95개의 스피커로 이루어진 <콘스텔레이션>의 골조를 조립했다. 마이크는 개방 조리실 등의 소음이 큰 곳을 제외하고는, 모든 테이블에서 소리를 모을 수 있도록 가급적 균등하게 배치되었다. 스피커 역시 손님들이 한 소리만 두드러지게 듣는 대신, 다양한 소리가 자연스럽게 섞여 들리도록 배치되었다. 이 모든 구성품은 두뇌 격인 디지털 신호 처리장치에 연결되었다. 맥북 프로 10여대 분의 능력을 지닌 이 처리장치는 100기가 플롭의 데이터를 저리할 수 있다. 이 처리장치는 어떤 마이크로폰에서 어떤 소리가 들어오는지 알 수 있다. 그러면 <코말>의 직원은 아이패드 인터페이스를 통해 음향 설정을 실시간으로 제어할 수 있다.

(식당 소음 3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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