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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환희 그리고 뇌 오르가즘 'ASMR'
고통과 환희 그리고 뇌 오르가즘 'ASMR'
  • 장순관 기자
  • 승인 2019.12.18 1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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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MR(자율 감각 쾌락 반응)동영상은 팬들에게 오르가즘에 가까운 쾌감을 준다. 그러나 또 어떤 이들에게는 분노를 준다. 이런 상반된 반응을 보면 음향이 인간의 피부 속으로 들어가는 방법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 수 있다.

유튜브는 즐거움을 주는 디지털 콘텐츠들이 얼마든지 있다. 유명인들의 집을 들여다 볼 수도 있고, 알고리즘이 골라 주는 음악을 즐길 수도 있다. 그리고 낮선 사람의 속삭임을 들으며 잠이 들 수도 있다.

마지막 문장이 이상하게 느껴진다면, 아직 자율 감각 쾌락 반응(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을 느껴보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하늘거리는 손가락과 부드러운 목소리는 어떤 이들의 뇌를 흥분시킨다. 온 몸을 진정시키는 즐거운 두뇌 자극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동영상을 보고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은 청각 과민증이라는 정신 질환의 결과다. 청각 과민증은 특정한 소리를 듣고 응전 또는 도피 반응을 보이는 증세다. 일각의 추산에 따르면 전 인구의 20%가 청각 과민증 환자라고 한다. 일부 사람들은 너무 심해서 업무나 사교가 불가능할 정도라고 한다. 반면 ASMR을 체험한 사람의 수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이러한 극단적인 음향 반응은 연구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이해도가 낮은 현상이다. 그러나 ASMR과 청각 과민증을 동시에 연구하면 두 현상 이면에 숨이 있는 메카니즘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잉글랜드 배스 스파 대학 심리학과의 선임 강사 아그니스카 자니크 맥컬린은 두 반응은 서로 반대되는 것 같아 보인다고 하였다. 청각 과민증을 의미하는 영어 misophonia는 그리스어로 소리를 싫어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혹자는 ASMR을 가리켜 뇌의 오르가즘이라고도 부른다. 똑같은 소리가 누군가에게는 역겨움을, 누군가에게는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논리적인 이유는 보이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피클을 오물오물 씹어 먹는 동영상을 보고 누군가는 편안함을 느끼는 반면 누군가는 격분한다. 어떤 사람이 손가락으로 찰흙을 때리는 동영상을 보고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과학자들이 음향과 즐거움 간의 연관 관계를 알아낼 수 있다면 흥분 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ASMR 동영상의 효용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동영상들은 시청자들의 긴장을 풀고, 수면을 유도하고, 불안과 우울증, PTSD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치료한다.

맥컬린 또한 ASMR을 강렬하게 체험했다. 그러나 그걸 연구할 생각을 한 것은 2014년부터였다. 공감각은 다양한 감각이 겹쳐져 색깔 있는 음악이나 이상한 맛의 이름을 만들어내는 뇌의 엉뚱한 작용이다. 그녀가 공감각을 연구하던 중, 피험자 한 명이 특정한 소리에 흥분을 일으킨다고 보고했다. 이후 맥컬린은 단 한 장의 과학 논문도 보지 않고 ASMR 관련 유튜브 채널 수백 개를 보는 식으로 후속 연구를 했다. “정말 이상했지만 나는 너무나도 큰 감동을 받았다.”

이러한 인터넷 상 ASMR의 작용 방법을 알고자 맥컬린은 이런 동영상을 보고 흥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연구 결과를 실어 주려는 학술지를 찾지 못해 애를 먹었다. ASMR을 디지털 유행 쯤으로 우습게 여기는 경향도 그 원인 중 하나였다.

ASMR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은 사이버 보안 전문가 제니퍼 알렌이었다. 그는 지난 2010년 페이스북에 ASMR 팬페이지를 개설하기도 했다. ASMR이라는 이름에서 M에 해당하는 meridian은 성적인 느낌을 주어 비난받을 여지가 있는 단어인 orgasm 대신, 가장 큰 쾌락을 묘사하기 위해 넣은 것이다. 그 이름의 나머지 부분은 모호한 임상 용어로 흥분을 묘사하고 있다. 2015년이 되어서야 웨일즈의 스완시 대학의 심리학자 2명이 ASMR에 대한 최초의 논문을 발표했다. 맥컬린의 데이터는 2017년에 발표되었다. 두 연구에서는 이 질환의 정의를 내리고, 그 계기를 밝히고 있었다. ASMR은 손가락을 튕기거나 속삭이거나, 머리카락을 빗질하는 등의 자극을 통해 일어날 수 있다. 맥컬린이 특히 놀랐던 점은 일부 ASMR 환자가 특정 음향에 극도의 혐오감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본 그녀는 청각 과민증에도 관심을 가졌다. 청각 과민증은 음향학자들이 지난 2001년에 처음 보고한 질환이다. 전문가들은 현재까지도 그 원인과 최상의 치료책을 모르고 있다. 그러나 얼마 안 되는 기존 연구도, ASMR에 비하면 훨씬 많은 참고자료를 제시하고 있다. 연구를 시작하기 위해 그녀는 청각 과민증 조사표를 구했다. 그 조사표는 지난 2014년 남플로리다 대학의 의사들이 개발한 것이다.

환자의 증상과 그 강도를 평가하고, 음향이 유발하는 특정 반응을 알아낸다. 점수가 높을수록 인지행동 요법 등 전문가의 치료가 필요하다. 2018년에 진행된 소규모 연구에서 맥컬린은 ASMR이 있다고 스스로 밝힌 피험자의 36%가 청각 과민증이 있음을 밝혀냈다. 무작위 선택한 통제군 중에도 일부가 ASMR을 경험했고, 이 중 70.8%는 진단적 기준에서 볼 때 청각 과민증 환자였다. 맥컬린은 이들이 ASMR 장르의 가장 흔한 소음 중 일부에 불쾌감을 느끼고, 그 결과 즐거운 소음을 찾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규모 연구에서는 두 증상의 뿌리가 같다는 핵심적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두 증상 모두 인체의 자율신경계 반응을 일으킨다. 자율신경계는 호흡 등의 반사 행동을 제어한다. 청각 과민증 환자가 특정 소음을 들으면 심박이 빨라진다. 반면 ASMR 자극을 받은 사람의 심박은 느려진다. 두 집단 모두 손가락 끝에서 땀이 많이 났다. 심리학자들이 신경계 각성의 증거로 여기는 현상이다. 다만 청각 과민증의 경우에는 불편함의 증거, ASMR 자극을 받은 사람에게는 환희의 증거다.

 

장순관 기자 bob07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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