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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향수로 오늘을 버틴다...'Nostalgie'

  • 기자명 안재후 기자
  • 입력 2020.03.03 15:37
  • 수정 2020.03.16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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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차를 타고 가다가 출신 고등학교를 지나친다던지, 예전에 춤출 때 들었던 음악을 다시 듣게 되면 영혼을 찌르는 그리움을 느낀다. 이런 묘한 기분의 느낌, 향수는 무엇 때문에 발생하는 것일까?

현대의 신경과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은 적절한 향수는 인간에게 좋다는 것을 알고 있다.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해 준다면 말이다. 그러나 지난 1688년 요하네스 호퍼가 자신의 논문에서 향수라는 말을 처음 지어냈을 때는, 달콤했던 기억은 쓰디쓴 기억을 떨쳐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리스어로 귀향을 의미하는 단어 nostos, 고통을 의미하는 단어 algos를 합쳐 향수를 의미하는 Nostalgie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이 단어는 같은 뜻 영어 단어인 nostalgia의 어원이 된다. 그는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전쟁터에서 싸우는 병사들이 겪는 특별한 심리적 고통을 설명하기 위해 이 개념을 사용했다. 의사들은 향수병이 너무 심해지면 사람이 죽을 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했다.

 

웨버 주립 대학의 역사학 교수인 수전 J. 매트에 따르면 호퍼 등 17세기 의사들은 향수병이 환자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정력을 약화시켜 건강을 해친다고 보았다. 19세기가 되면 의사들은 향수가 과연 질병인가, 또는 설사 등 병사들 사이에 만연한 다른 질병을 악화시키는 요인인가를 놓고 논쟁했다. 향수는 심박을 불규칙하게 하고, 열병을 일으키며, 드문 경우에는 사망까지 초래할 수도 있다는 데에는 의견이 일치했다.

이후에도 향수에 대한 이론은 발전해 왔다. 그러나 향수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존스 홉킨스 대학의 인지 신경 과학자인 프레드릭 바레트는 향수를 가리켜 매우 복잡한 감정이라고 말한다. 즉 모든 감정을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으로 양분하는 기존의 심리학 이론으로 재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동차, 음악, 향기 등 향수를 촉발시키는 매개체도 사람마다 다 다르다. 어떤 사람에게는 쓰레기에 불과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보물이다. 따라서 표준화된 연구를 설계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향수의 효과는 매우 크다. 그 점은 확실히 알려져 있다. 영상 연구를 통해 향수는 특유의 신경 신호를 낸다는 것이 드러났다. 지난 2016, 바렛은 의미 있는 음악적 신호가 흑질의 활동을 바꾼다고 보고했다. 흑질은 두뇌의 보상 처리 중추로, 행복 호르몬인 도파민을 생성한다. 같은 해 일본의 신경 과학자들은 감정이 두뇌의 회상 및 보상 체계에 의해 공동 생성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향수를 자아내는 영상을 보면, 기억을 관리하는 부분인 해마가 다른 영상에 비해 강하게 반응함을 알아냈다. 이로서 사람들은 그 영상에 관련된 세부 내용을 끄집어내게 된다. 이러한 정신 작용은 다른 작용을 불러일으킨다. 해마가 활성화되면 복측 선조체도 활성화된다. 복측 선조체는 두뇌의 또 다른 도파민 보상 중추다.

이러한 과거에 대한 열망은 보호 기제일 수 있다는 것이 잉글랜드 사우샘프턴 대학 사회개인 심리학 교수인 팀 와일드셧의 설명이다. 그와 동료들은 향수를 많이 느끼는 사람일수록 사회성이 높으며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인생의 의미를 쉽게 찾는다는 증거를 2001년부터 많이 확보해왔다. 또한 이들의 연구를 통해 향수의 가장 근원적인 기능에 대한 가설도 제시되었다.

과거에 두고 온 사람과 장소를 잊지 못하게 하는 신경학적 작용인 향수는, 불편하고 고통스러울 때 과거의 즐거웠던 신체적 자극을 잊지 못하게 하려고 진화되었다는 것이다. 2012년 학술지 <감정(Emotion)>에 게재된 연구에서 와일드셧 연구팀은 기온이 낮을수록 향수를 더 자주 느끼며, 향수를 느끼게 되면 추운 곳에 있어도 따뜻하게 느껴진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서도 사람들을 견딜 수 있게 해 주는 마법같은 힘이다. 추운 곳에 있어도 동굴에서 느꼈던 따뜻함을 떠올리면 덜 춥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얼어 죽기 전에 따뜻한 안전지대로 이동할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스웨터와 중앙난방이 있는 현대에도, 과거를 돌아보면 더욱 미묘한 방식으로 삶을 긍정할 수 있다고 연구자들은 말한다. 향수를 통해 자존감을 증대시키고, 압박에 견딜 힘을 얻는 것이다. 노스 다코다 주립 대학의 사회 심리학자인 클레이 루틀리지는 향수를 감정 조절 기제로 본 최초의 연구 중 일부를 수행했다.

그는 인간은 삶의 이미를 찾으려는 투쟁을 늘 벌이고 있다.”고 말한다. 불안감이나 부조리함을 느낄 때, 기억은 위안이 될 수 있다. 그는 살아오면서 얻은 소중한 체험들은 삶의 의미를 더해준다.”고 말한다. 향수는 그 체험을 돌아볼 수 있는 창문인 것이다.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감성적인 생각의 힘은 알츠하이머 병 등 치매 환자들의 기억력 증진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지난 2011년 뉴욕 대학 랭곤 병원 신경정신과의 연구자 메리 미틀먼은 치매를 앓고 있는 뉴욕 시민을 위한 합창단 <언포게터블스>를 창설했다.

이 합창단이 <올드 맨 리버> 같은 익숙한 곡을 부를 때면, 정상적으로 말을 하기 힘든 치매 환자들도 노래를 따라 불렀다는 것이다. 일부 의사들은 치매 치료에 음악 요법을 편입시키려고 하고 있다. 음악 치료사들이 환자 개개인의 특성에 맞추어 고른 재생 목록을 가지고 환자와 환자 가족을 위해 콘서트를 여는 것이다.

이런 추억 요법의 새 물결은 세계 도처에서 넘실거리고 있다. 지난 2018년 영국 런던에 위치한 신생기업인 <버추 헬스> 사는 가상현실 앱 <룩백>을 선보였다. 이 앱을 실행하고 헤드세트를 쓰면 전 세계의 명소를 가볼 수 있고, 또 친근한 해안을 거닐 수도 있다.

같은 해 조지 G. 글레너 알츠하이머 가족 센터는 첫 <타운 스퀘어>를 개소했다. 1950년대 미국 소읍처럼 꾸며진 이곳은 성인용 주간 치료 시설이다. <룩백><타운 스퀘어>는 아직 프로그램 성공 여부에 관한 동료 검토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고객들은 이 프로젝트들 덕택에 노인들이 오래된 기억들을 되살리고, 가족들과의 유대를 회복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과학자들이 이 복잡하고 미묘한 인간 감정의 특징을 충분히 이해하려면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수백 년 동안 의사들은 향수를 위험한 질병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는 그들이 틀렸음을 알고 있다. 인간은 지난 시간을 그리워함으로서 오늘을 견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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