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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운 박테리아...잃어버린 미생물을 찾아라

사라진 미생물 생태계를 무슨 수로 복원할 수 있겠는가?

  • 기자명 안재후 기자
  • 입력 2020.03.17 15:17
  • 수정 2020.03.19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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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제공

대부분의 몽골인들은 유당불내증(선천성 젖당분해효소결핍)이다. 그러나 그들은 매일 유제품을 먹는다. 신비로운 박테리아 때문일지도 모른다.

후브스굴 호수는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에서 북쪽으로 한참 떨어져 있다.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아무튼 몽골 내에 있기는 있다. 무려 13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그걸 견딜 수 없다면 프로펠러 항공기를 타고 무룬 마을까지 날아간 다음, 그 곳에서 자동차로 갈아타고 비포장도로를 3시간 동안 달려 하트갈 마을로 가라. 하트갈 마을은 후브스굴 호수 남안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마을은 녹색 평원 위에 펠트제 유르트들이 점점이 세워져 있다. 그 모습은 대부분의 몽골인들이 유목민으로 살아가던 과거(사실, 그리 먼 과거는 아니다)를 떠올리게 한다.

20177월 고고학자 크리스티나 워리너는 이 곳을 찾았다. 이 곳 주민들과 유제품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하트갈에서 그녀는 <야크의 축복>이라는 협동조합을 찾았다. 차로 몇 시간 거리 내에 있는 가족들이 모여 만든 이 협동조합은 소, 염소, , 야크 등으로부터 얻은 낙농 제품을 관광객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워리너는 <야크의 축복> 조합원들이 동물의 젖을 가지고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과정을 여러 시간에 걸쳐 보았다. 이들의 집 안팎 어디에나 유제품이 있었다. 커진 동물의 유방에서 젖을 짜 나무 통에 담은 다음, 냄비에 옮겨담고 쇠똥 불에 올린다. 갈비 모양의 나무 서까래에도 유제품이 가죽 부대에 담겨 매달려 있다. 특제 증류기 속에서도 유제품이 거품을 뿜고 있다. 목제 격자로 된 내벽에도 유제품이 두텁게 엉겨붙어 있다. 여자들은 심지어 유청으로 손을 닦는다. 워리너는 말한다. “유목민들과 함께 일하면 오감이 강하게 자극받는다. 유제품의 맛과 향은 정말 강렬하다. 내 딸을 키울 때가 생각났다. 어딜 가나 유제품의 냄새가 배어 있다.”

그녀가 방문한 모든 가구는 집 중앙의 난로 주변에 완성도가 다양한 대여섯 종류의 유제품을 벌여 놓고 있었다. 말을 키우는 사람들은 <아이락>이라는 말젖술을 팔러 오기도 했다. 거품이 이는 이 술을 들이키면 마을의 누구라도 신이 났다.

말젖술인 <아이락>, 엉긴 젖으로 만든 신 치즈인 <아룰>과 이름은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르다. <아룰>은 만들기가 매우 어렵다. 몇 주 동안 태양 아래에서 건조를 시켜야 한다. 그 때문에 식감이 매우 딱딱하다. 생으로 씹으면 치아가 부러질 정도다. 그냥 삼키거나 차에 넣어서 연하게 만들어 먹는 것이 좋다. <뱌슬락><아룰>보다는 먹기가 편하다.

나무판 사이에 넣어 눌러 만든 흰 치즈다. 탄 팝콘처럼 생긴 구운 응유 제품인 <에즈기>라는 것도 있다. 건조 식품으로, 가방 안에 그냥 몇 달 동안 넣어 놔도 상하지 않는다. <우룸>은 지방이 많은 응고 크림으로, 야크젖이나 양젖으로 만든다. 양의 위장으로 만든 포장지에 싸서 보관한다. 먹으면 한겨울에도 뱃속이 뜨끈해진다. 몽골의 겨울은 영하 18도 이하다.

워리너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우유나 야크젖으로 술을 만들고 남은 침전물이다. 현지어로 <쉬민 아르히>라고 부른다. “냄비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기름지고 맛있는 요구르트다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워리너는 요리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하트갈로 먼 길을 떠난 것이 아니다. 그녀가 여기 온 것은 다음과 같은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이다. 몽골인들은 이렇게 다양한 유제품을 즐기는데도, 전체 인구의 무려 95%가 유전적 유당불내증 환자다. 얼음이 얼지 않는 여름에는 몽골인들의 섭취 열량의 절반이 유제품에서 나온다는 것이 그녀의 판단이다.

과거 과학자들은 낙농업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면 당연히 유제품의 섭취 능력도 뛰어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워리너가 몽골에 와서 보니 얘기가 달랐다. 하트갈에 와서 보니, 답은 도처에 널려 있었다. 설령 그 답이 그녀의 눈에 보이지 않았을지라도 말이다.

울과 가죽, 나무로 된 몽골식 가옥의 주방은, 플라스틱과 철로 이루어진 구미식 가옥의 주방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그 차이에 그녀는 압도되고 말았다. 몽골인들은 미생물에 둘러싸여 살고 있었다. 그 미생물들은 동물의 젖을 발효시켜 식품으로 만들어준다. 그 미생물들은 몽골인들의 장내는 물론, 유제품이 배어 있는 유르트의 펠트 천에도 있다. 이 보이지 않는 생물체들은 자신들끼리는 물론 환경, 인체와도 상호작용을 하면서, 역동적인 생태계를 만들고 있었다.

이건 몽골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누구나 수십억 마리의 미생물과 함께 살아간다. 사람들의 장 내에만도 미생물이 수 kg은 있다. 연구자들은 이를 미생물군집으로 부른다. 그리고 미생물군집이 인간의 건강에 주는 영향에 대해서는 이제 막 연구가 시작된 수준이다.

물론 이러한 미생물군집 중에도 다른 것보다 더욱 다양성이 뛰어난 것들이 있다. 워리너는 현재도 하트갈 유목민들의 미생물군집을 연구 중이다. 또다른 연구팀은 이미 몽골인들의 미생물군집이 더욱 산업화된 다른 나라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미생물군집의 특성을 도식화한다면 언젠가 몽골인들이 많은 유제품을 먹을 수 있는 이유도 알게 될 것이고, 다른 곳의 유당불내증 환자들을 치료하는 방법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워리너는 모든 몽골 유르트의 미생물 생태계를 더 잘 알면, 그 외에 다른 문제들도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주장한다. 전세계 여러 지역에서 전통적 생활 양식을 버리고 신문명을 받아들이면서 치매, 당뇨병, 식품 불내증 등의 이른바 문명병이 창궐하고 있는데, 이런 질병에 대한 해결책도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워리너는 유당불내증 환자들인 몽골인들이 유제품을 즐겨 먹는 이유는 3,000년 이상 진화해 온 박테리아의 힘이라고 확신한다. 수천년 전에 죽은 몽골인들의 치아를 조사한 워리너는, 몽골인들이 그때부터 유제품을 즐겨 먹었음을 알게 되었다. 몽골인들과 산업화된 국가 사람들 간의 미생물군집 차이를 알면, 현대적 생활습관에 따르는 질병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것이 더욱 건강한 식습관인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워리너는 막스 플랑크 인류사 연구소의 고대 DNA 연구실에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이 곳은 중세에 생긴 독일 도시인 <예나> 시의 중심지를 굽어보는 높이 솟은 생명과학 연구 시설의 2층에 자리잡고 있다. 표본이 다른 DNA로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연구실에 들어가려면 30분에 달하는 출입 절차를 거쳐야 한다. 소독을 받은 다음,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가리는 타이벡 점프 수트를 입고, 수술용 안면 마스크와 보안경을 착용해야 한다. 안에 들어가면 박사후 과정생들과 기술자들이 드릴과 픽을 사용해 오래 전에 죽은 사람들의 치아에서 치석을 떼어내고 있다. 이 곳에서 워리너의 몽골인 표본 다수가 기록, 분석, 저장되었다.

그녀는 스위스에서 박사후 연구자로 있던 2010년부터 연구를 시작했다. 워리너는 수백년 전에 죽은 사람의 유골에서 전염병의 흔적을 찾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녀는 우선 유골의 충치부터 연구했다. 그녀는 좀 더 잘 관찰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 치아에서 치석을 분리해냈다. 치석은 광물로 이루어져 있다. 요즘과 같은 치과 의료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옅은 갈색의 덩어리가 되어 치아 위에 쌓여 있다.

비슷한 시기 아만다 헨리(현 네덜란드 레이던 대학교 소속 연구자)는 네안데르탈인의 치석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다가 광물 층 사이에 낀 녹말을 발견했다. 이는 네안데르탈인이 식물과 고기 등 다양한 종류의 식품을 먹었다는 증거다.

이 연구 결과를 접한 워리너는 중세 독일인의 치아 표본을 관찰하면 같은 시각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관찰을 시작하자 완벽히 보존된 박테리아들이 관찰을 방해했다. 그녀는 문자 그대로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박테리아들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표본은 단단한 광물 매트릭스 속에 보존되어 있는 미생물과 인간 유전자로 인해 관찰이 곤란할 지경이었다.

워리너는 고고학 유물 속의 작은 미생물을 관찰하여, 당시 사람들이 먹었던 음식들을 연구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워리너는 이것이야말로 예전에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박테리아 DNA의 보고임을 알았다. 다른 어디에서도 알 수 없던, 한 개인의 삶을 알려주는 타임 캡슐이다라고 말한다.

고대인들의 치석을 관찰하면 몽골인들이 무려 1,000년 전부터 유제품을 먹었다/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제공

치석 연구를 통해 미생물군집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이로서 워리너는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요직으로 올라갔다. 2019년 하버드는 그녀를 인류학 교수로 채용했고, 현재 그녀는 캠브리지, 메사추세츠, 예나의 연구소를 돌아다니며 지내고 있다. 그녀의 TED 강연 조회수는 200만 회가 넘는다. “사람들이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없애려는 것을 경력 내내 연구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그녀는 말하며 웃는다.

이 묘한 치과 연구 결과가 쌓일수록, 워리너는 DNA 이상의 것들을 배우고 축적하게 되었다. 2014년 그녀는 동료들과 그린란드 북부인 치아를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 바이킹은 그린란드에 정착한지 수백 년 만에 정착지를 버렸는데, 이 연구에서는 그 원인에 대해 가설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 정착지의 초기 거주자의 치석에서는 유단백질을 발견했는데, 500년 후 같은 지역 거주자의 치석에서는 유단백질을 거의 발견하지 못했다. 그녀는 이것이야말로 유제품 소비량 변화의 증거다.”라고 말했다.

이 발견을 통해 워리너는 비교적 가까운 과거의 인간 진화에 대한 커다란 난문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난문이란 왜 인간은 동물젖을 먹는가?”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성년기에 유제품을 먹을 수 있는 유전자를 갖고 있지 않다. 성년기에도 동물젖 속의 유당을 분해할 수 있게 변이된 유전자를 가진 인간은 비교적 소수(대부분의 북유럽인 포함). 이러한 능력을 유당분해효소 지속성이라고 부른다.

최근까지 유전학자들은 낙농업과 동물젖을 마시는 능력이 동반 발전해 왔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그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찾을 수 없었다. 유럽 전역에서 나온 DNA 표본을 보면, 현재 유당분해효소 지속성 유전자가 매우 풍부한 지역도, 기원전 3,000년까지는 해당 유전자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기원전 3,000년이면 인간이 소와 양을 축화하고 유제품을 섭취하게 된 지 한참이 지난 시점이다. 유전자 변이가 일어나 유당분해효소 지속성을 얻기 무려 4,000년 전부터 유럽인들은 치즈 등 유제품을 만들어 먹었다. 유당불내증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워리너는 당시 미생물이 유제품 소화에 도움을 주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그는 비슷한 상황이 펼쳐진 다른 지역들을 찾아보았다. 인간은 5,000년 이상 이전부터 유목과 축화를 했다. 그러나 유제품을 먹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었다. 그 증거는 그녀가 고대인들의 치아를 연구하고서야 나왔다.

워리너는 예나 연구실에서 2016년부터 수천 년 전 초원에 살았던 고대인의 치아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치아는 지난 1990년대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유골에서 나온 것이었다. 렌즈콩만한 표본에서도 쇠고기, 염소고기, 양젖의 단백질을 발견할 수 있었다. 치아 주인 유골에서 얻은 고대 DNA를 조사한 워리너는 치아 주인이 오늘날의 몽골인들처럼 유당분해 유전자가 없음을 알아냈다.

워리너는 현대 유목민들의 체내외에서 얻은 미생물군집 표본을 조사하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유당분해 유전자를 지닌 몽골인의 비율은 20분의 1정도로 추정된다. 그러나 몽골은 세계 굴지의 유제품 소비국가다. 일상 뿐 아니라 축제 때도 유제품을 먹고, 먼 길을 떠날 때도 안전과 성공을 기원하며 유제품 술을 마신다. 심지어는 속담에도 유제품 관련된 것이 많다. 몽골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유제품을 담았던 나무통에서는 젖비린내가 떠나지 않는다.” 오래된 습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고대 DNA 연구실 밖의 방에는 연구팀이 지난 2년 동안 모은 수천 개의 미생물군집 표본이 키 큰 공업용 냉장고에 담겨 보관되어 있다. 냉장고의 온도는 몽골의 겨울보다도 더욱 추운 섭씨 영하 40도다. 이 표본들 중에는 에즈기, 뱌슬라그에서 얻은 것부터, 염소 똥이나 야크 유방에서 채취한 것도 있다. 낙타, , 염소, 순록, , 야크의 젖이 담겨 있는 트럼프 카드만한 비닐봉지 수백 장도 있다.

워리너의 최초 가설은 과거 및 현재의 몽골 유목민들이 유당분해 미생물을 이용해 다양한 유제품을 분해, 소화, 흡수하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발효 과정에도 역시 미생물이 개입해 보리를 맥주로, 포도를 포도주로, 밀가루를 산성 반죽으로 바꾼다.

몽골인들이 먹는 모든 유제품은 발효식품이다. 물론 서구식 치즈도 발효식품이긴 하다. 그러나 파르메산, 브리, 카망베르 등의 서구식 치즈는 진균과 응유효소로 발효시켜 특유의 질감과 맛을 내는 것이다. 응유효소는 소의 위에서 얻는다. 반면 몽골은 발효용 배양균을 늘 보유하며 사용한다. 음식을 만들 때 꼭 일부를 남겨 두었다가 다음 번 음식 제작 때 사용한다.

민족지학적 증거를 보면, 이러한 준비가 매우 긴 기간 동안 진행되어 온 것을 알 수 있다. 몰골어로는 이 발효용 배양균을 회룅괴라고 부른다. 부유함, 유산 등을 나타내는 단어에서 파생된 말이다. 보통 어머니가 딸에게 물려주는 회룅괴는 살아 있는 유산이다. 회룅괴는 지속적인 관리와 급여를 해줘야 한다.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민족지학자이며 워리너 연구팀원인 비외른 라인하르트는 발효용 배양균은 여러 주, 여러 달, 여러 해, 심지어는 여러 세대에 걸쳐 잘 관리해 줘야 성능을 유지한다.”고 말한다. 그는 예나 연구실 냉장고에 있는 표본 대부분을 수집했다. “몽골인들은 유제품을 마치 아이처럼 세심히 보살핀다.” 아이를 기를 때처럼, 유제품 생산에 최적의 환경을 세심하게 조성해주는 것이다. 발효용 배양균의 구체적인 내용은 각 가정마다 조금씩 다른 것 같다.

2017년 하트갈에서 돌아온 후, 워리너는 <가보 미생물>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몽골 유목민들이 유제품 생산에 사용하는 미생물들의 식별 및 정리를 위한 프로젝트다. 프로젝트 이름에는 그 동안 배양균 업계와 연구소에서 무시했던 미생물들을 몽골 유르트에서 발견하기를 바라는 그녀의 바람이 담겨 있다. 워리너는 몽골인들은 서구 과학이 이제까지 몰랐던 새로운 종류나 조합의 미생물을 사용해 유제품을 만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현재까지 그녀는 장구균을 발견했다. 장구균은 유당 소화를 돕는 미생물로 인간의 장 내에는 흔하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의 유제품에서는 수십년 전에 멸종되어 버렸다. 물론 락토바실루스 같이 흔한 박테리아의 신종을 발견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제껏 전혀 보지 못했던 완전히 새로운 박테리아는 보지 못했다. 상품화가 가능한 마법의 미생물은 없는 것이다. 워리너와 함께 유제품을 연구하는 막스 플랑크 연구소 인류학자 마트하우스 레스트는 몽골에 수퍼 미생물은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현실은 더욱 난해하다. 몽골인들의 유제품 식습관은 이전에 보지 못했던 어떤 놀라운 미생물의 산물이라기보다는, 다양한 미생물들이 복잡한 상호작용을 거치며 만들어낸 쪽에 더 가깝다. 잘 관리된 발효용 배양균, 동물의 젖에 찌든 유르트의 펠트 천, 몽골인들의 장내 미생물군집, 아이락 통을 휘젓는 특별한 방법 등이 모두 맞물려 몽골인들이 아무 탈 없이 매일 대량의 유제품을 먹도록 해주는 것이다.

워리너의 프로젝트는 현재 <유제품 문화>로 이름이 바뀌었다. 몽골인들의 유제품을 만들어내는 미생물이 한 두가지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되면서 바꾼 것이다. 그녀는 과학은 매우 환원적일 때가 많다. 사람들은 사물의 한 가지 측면만을 보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낙농업을 연구하려면 동물, 미생물, 유제품 등 여러 가지 것 중 어떤 한 가지만 취해서는 안 된다. 낙농업 체계 전체를 유기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연구결과는 몽골 초원 밖에서 벌어지는 또다른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인간 장내에 사는 수십억 마리의 박테리아는 그저 얌전한 손님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의 건강에 매우 활발하게 개입한다. 인간의 면역 기능 유지와 소화 기능 촉진에도 기여한다. 그들의 활약상에 대해 알려진 바는 적지만 말이다.

지난 200년간 산업화가 진행되고, 소독술과 항생제가 발전하면서 미생물들의 생태계도 급격한 변화를 맞았다. 현대인은 과거에 비해 실로 다양한 음식을 먹는다. 쇼핑몰에만 가도 앉은 자리에서 스시, 팟타이, 피자 등 다양한 메뉴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메뉴는 다양해지는데 반해 식품들 간의 과학적 개성은 사라지고 있다.

대량생산되는 유제품의 경우, 요구르트나 치즈 같은 발효제품도 공장에서 만든 발효용 배양균을 쓰고 있다. 극소수의 기업들이 12억 달러 규모의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이들이 만들어낸 상품화된 식품들은, 오지의 전통적인 식품에 비해 장내미생물 종수가 30%나 적다. 지난 2015년 워리너는 아마존의 수렵 채집인들의 소화기에 사는 박테리아 중, 현재 서구인들의 몸 속에서는 전멸된 것들을 연구하는 연구팀의 일원이었다.

레스트는 현대인들은 자신들이 부모 세대보다 더욱 다양하고 국제적인 음식을 먹는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은 굳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미생물학적으로 보면 현대인의 식생활은 갈수록 빈곤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201910<사이언스> 지에 실린 검토 보고서에서는 전 세계의 연구소에서 데이터를 모아, 갈수록 줄어드는 식품 속 미생물학적 다양성이 인간의 건강에 악영향을 주는지를 알고자 했다. 치매, 당뇨, 심장병, 뇌졸중, 일부 암등은 <문명병>이라고도 불린다. 이들 문명병들은 모두 도시적 생활양식과 식습관, 가공식품, 항생제의 보급과 연관이 있다. 또한 식품 불내증, <크론병> 등의 장 질환, 과민성 대장 증후군 등은 늘어나는 추세다.

몽골 유목민들과 산업화된 지역 사람들의 미생물군집을 비교하면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이고, 그것들을 되찾을 방법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잃어버린 미생물이 뭔지 알아내면 인간 미생물군집 요법을 개량할 수 있고, 활생균의 과학적인 개량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을 할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불과 지난 50년 동안 수십만 명의 몽골 유목민이 초원과 전통적인 유목 생활을 버리고 수도 울란바토르로 상경했다. 현재 몽골 인구는 300만 명. 이 중 절반이 울란바토르에 모여 산다.

워리너의 팀은 2020년 여름 하트갈과 다른 몽골 시골로 가서 유목민들의 구강내 세포 표본과 대변 표본을 채취할 것이다. 이는 몽골 전통 미생물군집을 목록화하는 작업의 마지막 단계다. 얼마 전 그녀는 울란바토르 시민들에게서도 표본을 채취하겠다고 결심했다. 도시 생활로 새로운 식생활과 생활 양상, 그리고 훨씬 간략화된 미생물군집을 접하면 박테리아 균형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알기 위해서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것을 잃고 있다는 것이 워리너의 생각이다. 지난해 가을 어느날 아침, 그녀는 햇살이 비치는 사무실에서 앉아 있었다. 하버드 대학 캠퍼스의 피바디 고고학 및 민족지한 박물관의 사무실이다. 바로 전 몽골 여행을 통해, 그녀는 끔찍한 유르트별 미생물 멸종 상황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는 야생동물 멸종 위기에 비하면 크기는 매우 작다. 그러나 멸종당하는 생물의 종수로 따지면 손색이 없을 정도다. “사라진 미생물 생태계를 무슨 수로 복원할 수 있겠는가? 인간의 힘으로 가능할지조차 미지수다. 최선을 다해 기록하고 정리하고 문서로 남기면서 그 방법을 찾아내어야 한다고 말한다.

, 몽골 미생물 보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 수 세기 동안 미생물을 유지시켜 왔던 지식과 전통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 그녀 사무실 아래층에 가면 다른 민족들의 유물이 진열장에 보관되어 있다. 현재 하버드 대학이 있는 자리에 살았던 <메사추세츠> 부족에서부터, 한때 중남미의 광활한 땅을 호령했던 <아즈텍>, <잉카> 문명의 잔해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 양식은 현재 모두 사라졌다. 그들과 함께 살아왔던 미생물들의 관계망 역시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워리너는 말한다. “유제품 산업은 현재까지 무려 5,000년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는 그것들을 매일 발전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큰 변화를 견디지 못하고 붕괴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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