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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의 성당...사상 최대의 굴착 작업(2)

  • 기자명 김성진 기자
  • 입력 2020.04.24 16:07
  • 수정 2020.05.06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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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회사 <코스테인> 사를 위해 일하는 고고학자인 캐롤라인 레이너가 이 발굴 작업을 지휘하고 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구름이 낀 20191월의 어느 날, 그녀는 스스로 <고고학의 성당>이라고 부르는 특제 백색 텐트 속에서 작업을 지휘하고 있었다. 이 텐트는 보잉 747 항공기가 들어갈 만큼 크다. 텐트 속에는 안전모를 쓴 100여명의 발굴단원과 유골들이 있다. 유골들이 지하 8m 깊이에 10겹으로 매장된 경우도 있었다.

런던 시의 지하에 물이 들어차 산소가 사라진 곳에서는 썩기 쉬운 물건들도 잘 보존된다. 레이너의 연구원들은 몇 년 씩이나 손과 모종삽으로 흙을 제거해 오면서, 목제 의수족을 하고 있던 유골들을 많이 찾아냈다. 유골들 중에는 시신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 디킨스식 모자를 쓰고 있던 것들도 있었다. 어떤 남성 유골은 봄베이에서 만든 파란 슬리퍼를 신고 있기도 했다. 합장되었던 식물과 꽃도 나왔다. 레이너에 따르면, 그 식물들 중에는 아직도 원래의 색이 보존된 것도 있다고 한다.

갑자기, 한 연구원이 지면에서 그리 깊지 않은 곳에 있던 무덤에 관한 소식을 들고 달려왔다. 관 상태는 멀쩡한 부분은 별로 없어 보였다. 표토가 알갱이형이라 물이 잘 빠지는 곳에서는 나무가 오래 보존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관이 망가졌으니 구태여 열 필요도 없었다. 유골 위에 있던 납으로 된 명패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영국 해군 대령 매튜 플린더스, 18147월 향년 40세를 일기로 타계.”

이 발견은 HS2 프로젝트가 앞으로도 들려줄 수많은 발견들 중 하나가 되었다. 1150억 달러 예산 규모의 프로젝트 제1단계가 완료되면, 북쪽의 버밍햄으로부터 남쪽의 런던에 이르기까지 고대의 삼림과 교외, 도시를 뚫고 230km 길이의 철도가 생긴다. 그리고 그 공사는 레이너 연구팀 같은 연구팀들이 구간에 있는 모든 지하 유물을 발견을 해야 진행될 수 있다. 이 공사를 진행하는 HS2 유한회사를 위해 60여건의 발굴을 감독하고 있는 마이클 코트는 빙하기 이후의 모든 역사에 대해 고고학적 탐사를 하는 것과도 같다. 영국 전역의 모든 역사를 다 알 수 있는 기회다.”

HS2의 발굴작업은 1,000여명의 과학자와 발굴자가 참여하며, 영국 역사상 최대 규모다. 아마 유럽 역사상으로도 최대 규모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결코 예외적인 일이 아니다.

유럽 전역에서 개발이 진행될수록 땅 속에 숨어 있던 문명의 흔적이 나올 것이고, 따라서 이런 조사는 갈수록 흔해지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조사를 위한 입법 활동까지도 필요해진다. 한 때 연구자들은 박물관이나 대학을 위해 연구하면서 지겨워했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현장에 나와 있다.

이들 상업적 고고학자들은 HS2의 주 계약자인 런던 고고학 박물관(Museum of London Archaeology: MOLA)을 위해 땅을 파고 유물을 분석한다. 이들의 연구 활동은 철도 건설 프로젝트의 속도와 규모에 종속되어 있다. 때문에 연구 대상은 임의적이다. 발견 상황이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어떤 때는 주택 건축 현장에서 고작 몇 개의 무덤을 발견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대규모 공공시설 건설 현장에서 난데없이 전쟁터나 묘지를 발견해서 엄청난 양의 데이터 폭탄을 얻어맞을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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