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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도랑...사상 최대의 굴착 작업(4)

  • 기자명 임현재 기자
  • 입력 2020.05.04 14:40
  • 수정 2020.05.06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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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시내에서 이루어진 지하 발굴 현장/파퓰러사이언스 제공

고고학자가 런던 세인트 제임스 묘지에서 발굴한 유골을 조심스럽게 닦아내고 있다. 이 곳에서는 이런 유골이 수천 구나 발견되었다.

그 미궁 인근에 있는 작은 사무실에서는 어떤 연구자가 두개골을 붙들고 있다. <처리 요원>인 알바 모야노 알칸타라가 미술용 붓을 이용해 수백 년 묵은 두개골에서 흙을 털어내고 있는 것이다. 부상자 분류 간호사처럼 그녀는 유골과 다른 유물에 대한 다음 처리를 정한다. 이곳의 따스한 방에 놓여 있는 뼈들은 조금씩 말라 갈 것이다. 금속 유물들은 X선을 통해 원형을 드러낼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것들은 위층으로 올라가게 된다. 그 곳에서는 MOLA의 전문가들이 유물들의 세부 내용을 모두 기록하게 된다. 탁 트인 사무실에서 선임 골학자인 니암 카티, 엘리자베스 녹스가 두 구의 불완전유골을 검사하고 있다. 카티가 검사하고 있는 것은 젊은 여성 유골의 상반신이고, 녹스가 보고 있는 것은 남성 유골의 하반신이다. 오래된 묘지에서는 이렇게 유골이 토막나 있는 경우가 흔하다. 헌 무덤을 가르고 새 무덤이 생길 때 헌 무덤의 유골도 잘리는 것이다. 고객들과의 비밀 협약에 따라, 연구자들은 이 유골들의 출처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그러나 중세 이후의 묘지에서 나왔다고는 얘기했다. 세인트 제임스 묘지거나 그 비슷한 곳에서 출토되었을 것이다.

MOLA를 거쳐 간 수천 구의 유골들은 선사 시대에서부터 빅토리아 시대에 이르는 런던의 생물고고학 정보(질병 및 부상) 데이터베이스 작성에 기여했다. 카티는 우리가 조사한 모든 유골은 큰 그림을 그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유골의 부패한 치아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 치아 때문에 생긴 농양은 여성의 생전에 엄청난 고통을 주었을 것이다. 녹스가 조사 중인 유골의 종아리는 이상한 각도로 휘어져 있다. 유골이 어린 시절 구루병을 앓았을지도 모르는 증거다. 이 유골의 척추에는 쉬모르 결절이 있다. 쉬모르 결절은 노화 또는 육체 노동으로 인해 생기는 작은 만입이다. 녹스는 고고학자들도 다들 이런 병은 가지고 있을 것이라며 농담을 한다.

어떤 때는 작은 표본 하나 때문에 전국적인 현상을 알 수 있기도 하다. <크로스레일> 발굴 도중 나온 매장지는 17세기 런던 페스트 대유행 당시 사망한 사람들이 묻혀 있었다. 그 대유행으로 당시 런던 인구의 약 1/4이 죽었다. 연구자들은 이 매장지에서 나온 치아에서 페스트 박테리아의 DNA를 발견했다. HS2 발굴에서 나온 유골들의 분석이 끝나면 중세부터 산업혁명기에 이르는 영국인의 이주 및 질병 전파 양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MOLA 직원들은 하나 하나의 유물로부터도 귀중한 시각을 얻는다. 이른바 유물 전문가라고 불리우는 오웬 험프리스와 마이클 마셜은 무더기로 들어온 도자기 조각, , 동물 뼈, 기타 다양한 유물들을 조사한다. 험프리스는 나는 예전에 우리 일을 동화 <인어공주>에 나오는 갈매기에 비유한 적이 있다. 사람들이 물건을 가져다주면, 우리는 어둠 속에서 그게 뭔지 알아맞히는 것이다.”

마셜이 거든다. “물론 충분한 정보와 함께 말이지.” 그는 템즈 강변에서 발견된 로마식 침상의 다리를 들어 보였다. 만들어진 지 약 2,000년이나 지났지만 아직 표면의 붉은 페인트는 제 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영국에서는 정말 발견하기 어려운 것이다. 당대인들의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런 물건을 발견한 건 행운이다.”

이들의 조사는 유물들의 운명을 가를 수 있다. 런던 박물관은 8,000여개의 발굴 장소에서 획득한 700만여 점의 유물을 가지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고고학 유물 보유량이다. 이들 유물들은 조사를 거쳐 추가 연구를 받거나, 박물관에 비공개 보관되거나, 또는 세인트 제임스 묘지의 유골들처럼 재 매장된다. 일반 전시되는 것은 극소수다.

가죽 신발, 나무 빗, 검투사 투구에 달린 호박 조각, 그 외에 로마 제국 시절 유적 약 600점이 런던 중부에 위치한 블룸버그 LP의 새 유럽 본부 1층을 장식하고 있다. 9층짜리 건물은 3세기 로마 미트라스 신전이 있던 곳에 자리 잡고 있다. 1950년대 사무용 건물을 짓다가 처음 발견된 이 미트라스 신전은 의미가 없을 정도로 지독하게 서툰 재건축을 당했다는 것이 이곳 현장의 수석 고고학자의 설명이다.

2014MOLA가 블룸버그를 위해 재 발굴을 한 이후, 이 신전의 역사를 또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현재 방문자들은 여러 층의 계단을 내려가 어두운 방에 들어간다. 빛과 안개가 빚어낸 환영이 이 지하 신전의 땅딸막한 지반에서 뻗어 나온 벽의 모습을 이룬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발자국 소리와 불길한 느낌의 라틴어 노래 소리가 점점 커진다. 그리하여 이 폐허를 밀교 의식의 장소로 바꾼다.

분명 많은 건설사들은 고고학 탐사를 시간과 돈이 많이 들고 강요된 의무로 여긴다. 건설 현장의 고고학 탐사 비용에 대해 공개된 정보는 별로 없다. 심지어는 HS2에 관해서도 말이다. 그러나 본머스 대학의 고고학자 다빌의 연구에 따르면, 고고학 탐사의 비용은 수백만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물론 이 금액도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휘황찬란한 새 미트라스 신전은 일부 건설사들이 고고학과 공생함으로서, 과거를 통해 자신들의 건축 프로젝트를 더욱 현지 친화적으로 만들 방법을 찾아낸 증거다. 한 때 황량했던 런던 동부의 쇼어디치에서도 고급 주택화와 고고학 유적 간의 공생이 진행되고 있다. 16세기 극장 <커튼 극장>의 잔해는 장차 새 다용도 개발에 통합될 것이다. 광고 문구에 따르면, 이 극장 잔해는 화려한 삶을 전시하는 새로운 상징적 공간이 될 것이며, 동부 런던의 첫 세계 문화유산이 될 것이다.

HS2로 드러난 고고학적 발견은 너무 방대해서, 건물 하나의 지하실이나 로비에 다 보여줄 수 없다. 처리 및 분석에는 몇 년이 걸릴 것이다. 2019년 가을 현재 가장 큰 발굴지 두 곳만이 발굴이 완료되었다. 세인트 제임스 묘지, 그리고 버밍햄 역 인근 산업혁명기 묘지(6,500기 규모)가 그 곳이다.

HS2 고고학자들은 현재 두 곳 사이에 있는 여러 시험호를 운용하면서 어느 곳을 본격 발굴해야 할지 고르고 있다. 코트는 이들 중 일부는 한 세대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한 대단한 발굴 장소다. 나머지 중 일부는 그보다 규모가 작지만 역시 흥미로운 곳이다.”고 말한다. HS2가 런던 외곽 산들에 있는 <그림의 도랑>을 지나갈 것이라는 점 역시 잘 알려진 바다. <그림의 도랑>은 수수께끼에 싸인 선사시대 유적지다. 더 북쪽에는 로마 제국 시절의 마을과, 1,000년 전에 철거된 교회의 잔해도 있다. 연구자들은 에지코트 무어 전투의 유적도 발견하기를 바라고 있다. 장미 전쟁 중이던 1469년 노스햄프턴셔에서 발생한 전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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