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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해도 위에 새 항로 개척...사상 최대의 굴착 작업(5)

  • 기자명 임현재 기자
  • 입력 2020.05.06 14:36
  • 수정 2020.05.06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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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대의 굴착 작업/ 파퓰러사이언스 제공

그러나 HS2의 고고학적 야망의 종착점은, 철도 인프라의 인기 정도에 달려 있다. 영국 수상 보리스 존슨은 HS2의 해체 필요성을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건설비용은 늘어만 가고, 공기도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비평가들은 HS2가 가져올 이익이, HS2로 인한 환경 파괴, 토지 점유,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되는 비용에 비해 크지 않다고 주장한다. 유스턴 역 근처 주민들은 이 공사가 녹지를 훼손하고, 주택과 사무실, 호텔 건물을 무너뜨리고, 제대로 된 보상을 주지 않은 채 현지인들을 내쫓고 있다며 반발한다. 인근 교회의 교구 목사는 심지어 자신의 몸을 나무에 묶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 유적 발굴에 따르는 문화적 이점이 있다고 한들 사람들의 의심만 사기 딱 좋다. 발굴 현장의 어귀에 있는 캠덴 국민 극장의 미술 감독인 브라이언 로건은 세인트 제임스 묘지 발굴로 역사가 드러난다는 얘기를 듣고 나도 설레였다. 그러나 아무리 고고학에 심취해 있는 사람이라도, 고고학의 실질적 효용에 대해서는 회의적일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문제를 다룬 2019년 공연의 첫 막에서, 로건은 프로젝트의 홍보부를 찾아갔다. 철도를 발견의 보물 창고로 삼는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고고학은 정말로 보물을 계속해서 캐낼 수 있는 직업인가?”

개발업자 주도형 발굴의 시대에는, 발굴자들도 이러한 문제를 생각해 봐야 한다. 숙련된 고고학자인 레이너는 현재 시선을 세인트 제임스로부터, 유스톤 역에 연결된 24km 구간의 철로로 돌렸다. 그녀 역시 자신의 일이 지속 가능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데는 동의한다. 다빌에 따르면, 고고학자들 중 건설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 절반이나 된다.

보물을 계속 파낼 수 있다면 정보의 골드 러시도 일어날 것이다. 이는 축복인 동시에 저주가 될 수 있다. 수장고에 빈틈이 없을 정도로 유물들이 많이 밀려온다면 전 세계의 박물관들은 저장 공간 부족 사태를 겪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발굴이 많아지면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격전지까지도 고고학 연구 대상으로 삼는 요즘의 학계 분위기에서라면 말이다. 레이너는 이 모든 정보를 관리하고 과학적으로 분석하며 대중에 공개하는 것을 발굴보다도 더 큰 문제로 여기고 있다. 세인트 제임스 묘지 발굴만 해도 3.5테라바이트의 데이터를 생산했다. 그녀는 사람들과 이 데이터에 대해 소통할 수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한다.

다행히도 그건 비교적 쉬운 문제에 속한다. 레이너의 경험으로 볼 때, 사람들은 과거의 냄비, 그릇, 공구, 기타 장식품 등에 본능적으로 반응을 보인다. “인간의 욕구는 시대가 흘러도 크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HS2의 전설은 아직도 계속 새롭게 써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자그마한 발견들은 영국 역사에 길이 남을 위인인 매튜 플린더스의 시신 발견만큼이나 대중들의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는다. 플린더스는 오늘날의 유스톤 역이 자신의 무덤 자리에 들어설 줄을 알지 못했고, 자신의 시신이 귀중한 과학 표본이 될 거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좋건 싫건 간에 그는 역사라는 해도 위에 새 항로를 개척했고, 그 항로 위에서만 자신의 가치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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