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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 해부학 의과대학 전유물인가?

  • 기자명 장순관 기자
  • 입력 2018.07.05 15:52
  • 수정 2018.07.05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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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퓰러사이언스 장순관 기자 ]

 

비벌리 보이어는 사람의 몸이라면 잘 알고 있다. 공인 마사지 치료사인 그녀는 매일 산 사람의 근육을 풀어주고 있다. 그러나 처음으로 시체의 내부를 들여다보았을 때를 회상하는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엄청난 낭만의 시작이 느껴졌다. “모든 것이 생생했다. 해부학과 생리학을 통해 배웠던 모든 것들을 눈으로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2월 화요일 밤이었다. 보이어는 어느 장의사의 지하실에서,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시체 사랑’을 전하고 있었다. 2014년 그녀는 현 콜로라도 인체 해부학 학습 센터를 창설했다. 이 센터는 롱몬트 영안실의 일부를 임대해 활동하고 있다. 마사지 치료사, 요가 강사, 침술사, 에너지 노동자 등 인체 전문가들이 기증받은 시체를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이 센터의 일이다. 매주 보이어의 학생들 수십 명이 여기 모여 시체의 연조직을 조작해 보며, 여기서 얻은 해부학적 시각을 자신들의 일에 적용하려 한다.

비 의료인을 대상으로 한 이런 시체 학교들이 지난 몇 년 간 소수 생겨났다. 이들은 기존에 해부학을 배울 수 없던 사람들에게 해부학을 가르쳐준다. 교육의 주안점은 인체의 근막, 근육 원점, 삽입점, 신경계, 생체역학적 기능과 그 이상 등이다.

과학, 요가, 그리고 기묘해 보이는 것이면 뭐든 좋아하는 사람인 필자는 이 기이한 해부 마니아들이 과연 시체에서 무엇을 얻어갈지 오래전부터 궁금했다.

오늘 필자는 보이어가 10여명의 요가 강사를 상대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수업의 강사는 보이어가 아니다. 오늘의 강사는 베살리우스다. 학생들은 베살리우스의 발을 돌려가며 보고 있다. 학생들은 베살리우스의 발을 보기 직전, 종이 가운과 고무장갑, 마스크를 착용하며 주의 깊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스크에는 포름알데히드의 냄새를 막기 위해 유칼립투스 오일이 발라져 있다. 그러나 베살리우스의 발이 그 모습을 드러내자 모두가 침묵을 지켰다. 흰색에 가까운 밝은 노란색에 묘하게 화려한 그 발에는 섬유근과 힘줄이 삐져나와 있었다.

발이 학생들 사이를 한 바퀴 도는 동안, 보이어는 몸통을 가리고 있던 수건을 벗겼다. 그는 가죽이 벗겨져 분해된 몸통에서 근육과 뼈의 층을 들어내 보였다. 한 학생이 말했다. “마치 칠면조 같네요.” 어떤 이들은 킥킥대다가, 갑자기 웃음을 멈췄다.


보이어는 베살리우스의 척추 세움근을 찾고 있었다. 척추 전체에 연결되어 있는 근육 뭉치다. 학생들의 전문 분야인 인요가에서는 긴 아기 자세를 통해 이 근육을 찾을 수 있다. 긴 아기 자세는 몸을 앞으로 굽혀 척추 세움근과 그 근막을 이완시킨다. 이론에 따르면 이렇게 이완시키면 부교감 신경계를 활성화시켜 신체의 전투 또는 도피 충동을 다스리고 신체적 스트레스를 해소한다고 한다.

보이어가 베살리우스의 텅 빈 몸통 속에 손을 넣자, 한 학생이 일어났고, 마치 눈물을 머금은 듯이 눈에서 빛을 발하는 학생도 있었다.

안경을 쓴 다나 발라파스는 인스타그램에 올려도 될만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다른 학생들과 좀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보이어가 몸을 앞으로 굽히는 데 도움을 주는 척추 세움근의 역할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 때 발라파스는 갑자기 다리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보이어는 강의를 멈추고, 발라파스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발라파스는 대답했다. “예. 괜찮습니다.” 그리고 다시 똑바로 섰다. 자신의 척추 세움근의 기능을 이해하려고 그랬던 것이다.

의사, 검시관, 의대생이 아닌 사람도 분해된 시체를 취급할 수 있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의료인들은 묘지에서 도굴한 시체나 공개 처형에 처해진 사형수의 시체를 가지고 인체를 연구해야 했다. MRI가 나오기 전까지 인체를 제대로 연구할 수 있는 방법은 시체 해부 말고는 없었다. 호기심 넘치는 해부가들은 해부를 하기 위해 기존의 모든 법률과 사회적 금기를 깨야 했다.

해부의 역사에 대한 연구 논문을 쓴 라파엘 훌코어는 이렇게 말한다. “의사와 의대 직원들도 시체 도둑질에 가담했다.” 물론 불쾌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장차 사람을 살릴 의대생들은 인체에 대해 절실히 알고 싶어했고, 시체 도굴이야말로 그걸 지원할 방법 중 하나였다. 디지털 의료와 컴퓨터 시뮬레이션의 시대인 현대에도, 의학자들은 시체 해부야 말로 의대생들에게 해부학을 가르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다면 인체에 대한 경이를 품고 있는 요기들이 인체의 내부 구조를 알기 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리고 콜로라도 주에서는 이곳에서 반경 160km 내에 유사한 강의를 진행하는 곳이 2군데 뿐이다. 때문에 보이어의 시설이야말로 실제 시체를 보면서 공부하려는 이들에게는 금싸라기 같은 곳이라 할 수 있다.

보이어는 20년만에 그 모두를 뛰어넘었다. 마사지 치료사가 된 지 2년이 되던 1995년, 그녀는 오하이오 주립대학의 어느 교수를 설득해 시체 해부 연구실을 견학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서 시간은 좀 걸렸지만, 보이어도 시체 해부 연구에 뛰어들게 되었다. 2016년에는 약 400명, 2017년에는 700명 이상이 그녀의 강의를 들었다.


과학 발전을 위해 시신을 기증해 준 사람들은 법률가, 건설 노동자, 간호사, 교사 등 다양한 직종에 속해 있었다. 이들 대부분이 해당 지역 공동체 출신이었고, 일부는 생전에 요가를 수련하기도 했다. 기증자들은 생전에 자신의 시신을 기증할 수업을 선택할 수 있다. 또한 교육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자신의 삶과 직업, 기타 정보를 보이어가 학생들에게 밝히는 여부도 정할 수 있다.

교실 가운데에 놓여 있는 오늘의 <강사>는 두 가지 정보만 공개할 것을 생전에 원했다. 사망 나이(88세)와 사망 원인(대장암)이다. 보이어는 그에게 베살리우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베살리우스는 16세기에 살았던 플랑드르 지방 의사다. 또한 현대 인간 해부학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학생들이 베살리우스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베살리우스의 생리학적 특징에 관련된 뒷이야기를 꺼냈다. 보이어는 베살리우스를 전에는 <농부>라고 불렀는데, 우측 극상근 때문이었다. 회선건판의 일부인 이 극상근에는 장력선이 있었다. 소 올가미 밧줄을 던지는 등, 팔을 머리 위로 드는 운동을 반복적으로 했다는 증거다. 또한 그의 무릎에는 관절염 징후가 없다. 그 나이 치고는 드물다. 보이어는 아마도 베살리우스가 걷기보다는 말을 탄 채로 더 오랜 시간을 보냈으리라고 짐작했다.

필자는 요가 수련을 철저히 했지만, 요가에 관련된 과장된 주장이나 유사과학은 경계하고 있다. 요가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통증을 완화해 주며, 유연성을 높인다. 그러나 요가의 핵심은 영적이다. 그리고 영혼과 과학은 겹치는 지점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보이어가 과학 관련 화제에서 벗어나 <차크라>를 말했을 때는 마치 외국에서 우리말을 들은 듯 했다. 차크라는 동양 종교에서 인간의 생명력과 연관 짓는 바퀴 같은 에너지 중추다.

그럼 이제 그녀는 제3의 눈의 장애나 진동을 설명할 수 있는 신경 다발을 보여줄 것인가? 아니면 엉덩이를 벌리는 요가 포즈가 고장난 천골 차크라를 고치고 감정적 웰빙을 회복하는 원리를 설명할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과학적 추정을 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점과 점을 잇는 것을 즐거워했다.

보이어는 “여기가 심장 차크라 자리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흉강을 가리키는 그녀의 동작은 강의라기보다는 명상에 더 가까웠다. “심장은 흙과 위를 취하여 하늘로 연결한다.”

베살리우스의 심장은 그를 하늘로 연결시켜주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엉덩이에서부터 발까지는 플라스틱 통에 들어가 있다. 보이어는 베살리우스의 신체 조직을 학생들이 만지게 해 주었다. “이것이 둔근이다. 여기를 잡아당겨 봐라.” 그러자 학생은 긴 가죽 같은 장경인대를 잡아당겼다.


다리에 붙어 있는 장경인대는 대둔근 위의 장골능선의 맨 위에서부터 무릎까지 뻗어서 엉덩이의 움직임을 돕는다. 오늘밤 보이어는 베살리우스의 등을 가지고 연결 조직의 유연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보이어가 말했다. “더 세게 잡아당겨 보라.” 학생이 그 말대로 따라했다가 놓자, 장경인대는 원래대로 돌아갔다. 보이어는 엉덩이를 플라스틱 통에 도로 넣었다.

보이어는 과학을 위해 시체를 기증해 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했다. 그녀 역시 시신 기증 서약을 한 상태였다. 수업이 끝나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 밤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들에게 감사하십시오.”

학생들이 가운을 벗고, 사용한 장갑을 벗어 쓰레기통에 넣고, 손을 씻자 다시 이런저런 말소리가 들려왔다. 수건으로 싸인 시체는 여전히 그들 옆의 테이블에 놓여 있었다. 시체 위에 뭔가를 분무하고 있었다. 몇 사람은 베살리우스가 정말로 칠면조 육포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제부터 그들은 다운워드 도그 자세를 취할 때마다 오늘 본 시체를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이상한 모양의 분무 병들을 보았다. 시체에서 떨어지는 습기가 금속제 테이블의 배수구로 들어가고 있었다. 해부학 차트 곁에는 친절함에 대한 인용문이 나오고 있었다. 발라파스는 스트레칭을 하기 싫어질 때마다, 학생들에게 요가 동작을 가르칠 때마다 베살리우스의 척추를 떠올릴 거라고 말해 주었다. 그러나 80대에 뇌종양으로 죽은 교사인 미스 V의 심장을 다루어 본 발라파스는 좀 더 흥미로운 요청을 했다. 그녀의 두개골 내부를 보여달라는 것이었다. 블라파스의 어머니도 같은 병으로 죽었기 때문이었다. 보이어는 수건을 들춰 문제의 두개골 내부를 보여주었다. 종양의 위치를 보여주고, 종양이 문제를 일으킨 뇌 부위가 매우 작았다고 설명했다. “그 분의 두뇌는 아름다웠어요.” 라고 보이어는 말한다.

by 에린 블레이크모어  정리:장순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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