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UPDATED. 2024-04-20 14:00 (토)

본문영역

‘살인의 충동’은 유전적 원인인가?

당신의 유전자가 당신을 살인자로 만들 수 있을까?

  • 기자명 장일정 기자
  • 입력 2017.09.15 14:05
  • 수정 2017.11.23 17:42
글씨크기
▲사진과 같은 뇌 스캔을 통해 사이코패스들은 충동제어와 감정처리를 담당하는 뇌 영역에 결함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진과 같은 뇌 스캔을 통해 사이코패스들은 충동제어와 감정처리를 담당하는 뇌 영역에 결함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06년의 어느 가을밤. 미국 테네시주 남동부 시골마을의 한 트레일러에서 브래들리 왈드럽이 걸어 나왔다. 별거중인 아내가 친구인 레슬리 브래드쇼와 함께 4명의 자녀를 그에게 데려다주러 막 도착한 참이었다. 그의 손에는 22구경 사냥총이 들려 있었다.

왈드럽은 차에서 내린 두 사람과 말다툼을 벌였고, 브래드쇼에게 8발을 발사해 살해했다. 아내는 도망쳤지만 칼과 정글도를 들고 쫓아온 왈드럽에게 붙잡혔고, 새끼손가락이 잘린 채 트레일러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왈드럽은 겁에 질려 있던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리 와서 엄마에게 작별인사를 하렴.”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던 순간, 기적처럼 아내는 왈드럽의 손아귀를 뿌리치고 밖으로 도망치는데 성공했다.

변호인들은 유전자 변이가 살인 용의자 브래들리 왈드럽의 폭력적 성향을 촉발했다고 주장했다. 배심원들은 이런 주장을 받아들여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지 않았다. 3년 후 법정에 선 왈드럽은 범행 일체를 인정했다. 당시 술에 취해 있었고, 그날의 어떤 것도 자랑스럽게 생각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증거가 너무나 명백했기에 왈드럽이 1급 살인죄로 사형을 선고받을 것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그의 변호인 팀이 사형만은 면하도록 하고자 예상치 못한 논거를 펼쳤다. 이들은 왈드럽의 혈액 샘플을 테네시주 밴더빌트대학의 분자유전학 연구실로 보냈다. 특정 유전자를 찾아달라는 부탁과 함께였다. 예상대로 연구자들은 왈드럽의 혈액을 분석, X염색체에 위치한 모노아민 산화효소 A(MAOA)’의 유전자 변이를 발견했다.

MAOA는 도파민, 세로토닌 등 주요 신경전달물질을 분해하는 역할을 한다. 만일 MAOA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이 신경전달물질들이 뇌 속에 축적돼 충동제어에 어려움을 겪고, 폭력성과 분노감이 커진다. 변호인은 이런 이유를 들어 왈드럽의 범행은 일정부분 유전자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폭력성 및 반사회적 행동과 관련된 유전자 가운데 가장 큰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 바로 MAOA. 유전학자들은 20여 년 전부터 MAOA 결핍이 폭력적 행동과 유관하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언론들이 MAOA 결핍 유발 유전자를 전사 유전자(warrior gene)’라 부른지도 10년이 넘는다.

정신질환의 원인 역시 유전자와의 관련성이 크다. 지난 1월에도 하버드대학 연구팀이 정신분열증의 원인 유전자를 규명해 정신보건학계에 충격을 줬다. 이 유전자 변이로 인해 청소년기와 초기 성년기에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뇌 전두엽의 시냅스가 과도하게 가지치기 되면서 집중력, 충동 제어 능력이 손상돼 정신분열증이 유발된다는 것이다.

물론 정신분열증 환자 중 폭력성이 나타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다만 중증 정신질환자의 경우 폭력적 성향을 띨 확률이 일반인의 2~3배에 달한다는 게 정신건강 업계의 조심스러운 지적이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총기 난사와 보복운전 뉴스들을 지켜보며 과학자, 법집행 기관, 정치인, 정신보건 전문가, 대중들은 어떻게 해야 이 같은 사건들을 막을 수 있을지 묻고 있다. 폭력적 성향의 인물들을 사전에 밝혀낼 방법이 없을까. 연쇄살인범과 총기 난사범, 묻지마 살인범, 그리고 지난 2월 우버 택시를 운전하며 4시간 동안 총기를 난사해 6명을 살해한 제이슨 달튼 같은 사람들 사이에 어떤 유전적 유사성이 있지는 않을까.

사실 이는 꽤 불편한 질문이다. 혹자는 이것이 독일 나치가 자행했던 골상학이나 우생학과 다를 바 없는 발상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유전학자들이 인격적 특성과 병리학을 둘러싼 비밀의 문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행동주의보다는 유전자 결정론에 더욱 힘이 실리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때 우리는 알코올 중독이 인격적 결함 때문이라 믿었다. 그러나 과학계가 이를 유발하는 유전자를 발견하면서 이제는 알코올 중독을 개인적 문제라기보다 질병의 하나로 본다. 또한 우리는 뇌기능에 오류를 일으켜 불안 행동을 촉발할 수 있는 유전자의 존재도 받아들였다. 폭력성도 유사한 맥락이다. 과학계는 폭력성 유발 유전자의 존재 증거를 갖고 있다.

▲왼쪽부터 희대의 연쇄 살인마 테드 번디, 무차별 총기 난사로 6명을 살해한 우버 택시기사 제이슨 달튼,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 애덤 란자. 유전자 스크리닝이 이들의 범행을 예방할 수 있었을까?
▲왼쪽부터 희대의 연쇄 살인마 테드 번디, 무차별 총기 난사로 6명을 살해한 우버 택시기사 제이슨 달튼,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 애덤 란자. 유전자 스크리닝이 이들의 범행을 예방할 수 있었을까?

■■■

폭력성의 유전적 근원을 찾는 현대적 연구는 1978년 네덜란드 동부 네이메헌의 한 대학병원에 여성 한명이 나타나면서 시작됐다. 그 여성은 자신의 가족, 정확히 말해 폭력 범죄를 저지른 여러 명의 남성 형제와 아들을 도울 방법을 찾고자 이 병원을 찾았다.

그들 중 두 명은 방화를, 한 명은 여동생을 강간하려 했다. 직장 상사를 자동차로 치어 죽이려 했거나 여성 가족을 칼로 위협해 옷을 벗기려 한 사람도 있었다. 그녀는 이들이 동일한 정신장애를 앓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친척 한 명이 1962년 작성한 이 가문의 폭력범죄 내력에 따르면 남성들의 폭력성은 무려 1870년대부터 이어져 왔다.

병원 연구팀은 10년 이상의 분석을 거쳐 문제의 원인을 특정했다. 폭력 범죄를 저지른 남성 모두에게 X염색체 돌연변이가 발견된 것이다. 연구팀은 이 돌연변이가 MAOA 유전자의 이상을 초래해 폭력적 성향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MAOA 유전자는 X염색체에 위치하는데, 남성은 X염색체가 하나뿐이라 이상이 생기면 큰 타격을 받는다. 이와 달리 두 개의 X염색체를 가진 여성은 하나에 문제가 생겨도 나머지 하나가 보완해줄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유전적 문제를 아들에게 대물림시킨다.

이후 다수의 연구가 이어지면서 폭력적 행동과 관련된 유전적 위험 요인들이 발견됐다. 예컨대 2011년 독일 연구팀에 의해 단백질을 코딩하는 카테콜-O-메틸전달효소(COMT)’ 유전자의 변이와 살인행동의 연관성이 밝혀졌다. 참고로 COMTMAOA와 마찬가지로 뇌가 만든 마약이라 불리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의 제어에 관여한다.

2015년 핀란드의 교도소 재소자를 대상으로 한 공동 연구에서도 폭력 범죄자들은 MAOA 또는 CDH13 (Cadherin 13) 유전자의 변이를 가진 사례가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CDH13은 뇌세포 사이의 신호체계를 지원하는 단백질의 코딩 유전자다.

이들 유전자의 변이가 자폐증, 정신분열증,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와 관련 있다는 연구결과는 이외에도 많다. 미국 분자정신의학지에 게재된 한 논문에서는 폭력적 범죄 행위를 이끄는 유효 인자로 CDH13 유전자의 변이와 세포의 기능장애를 지목하기도 했다.

많은 과학자와 윤리학자들은 이처럼 생물학적 요인이 폭력성의 근원이라는 시각에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이들은 유전자의 발현에는 환경적 요인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한다. 유방암 발병 유전자를 지녔다고 반드시 유방암에 걸리지 않듯 정신분열증 발병 유전자를 가진 모든 사람이 정신분열증에 걸리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미국 존스 홉킨스대학 산하 리버 뇌개발 연구소의 다니엘 와인버거 소장도 이에 동의한다.

유전자는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매초마다 모든 인체 세포의 모든 활동에 관여하는 프로그램과 같습니다. 부모에게 작은 결함을 유전 받으면 다소 문제가 생길 수는 있어요. 하지만 반드시 정신질환을 겪는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 결함은 숙명이 아닌 위험성이에요.”

실제로 왈드럽과 동일한 변이된 MAOA 유전자를 가졌음에도 평생 아무도 해치지 않은 사람이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이미 법정은 유전자가 범죄의 원흉이라는 주장에 대한 윤리적·과학적 논쟁의 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미국 포드햄대학 신경과학·법률센터의 데보라 데노 박사에 의하면 2011년 한 해 동안 범죄 피의자측 변호인이 법정에서 유전자를 언급한 횟수가 1994년 대비 80배나 늘었다.

변호사들은 무죄를 입증할 증거 대신 범죄행동을 설명할 타당한 구실을 찾는데 더 많은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왈드럽 사건에서 배심원단은 사형 대신 종신형을 선고했다. 킬러 유전자를 이용한 변호 전술이 통한 셈이다. 한 여성 배심원은 왈드럽의 유전 정보가 판결에 영향을 미쳤는지 묻는 언론의 질문에 확실히 영향을 줬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데노 박사는 법원과 언론이 유전자 변이의 영향, 그리고 폭력성과의 연관관계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피력한다. 심리학, 사회학, 통계학을 아우르는 학문인 행동유전학에서는 인간의 행동이 유전자에 더해 환경적 요인에도 영향을 받은 산물로 본다는 이유에서다.

유전자가 행동에 영향을 줄 수는 있어요. 하지만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거나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영양실조나 사회·경제적 갈등, 낮은 교육 수준 같은 환경적 요소들은 성인기의 행동을 좌우하는 가장 강력한 인자의 하나다. 아동기의 학대가 성인기에 폭력적 성향으로 나타난다는 점은 심리학계에선 이미 오랜 정설이다. 2002년 사이언스지에 실린 연구에서도 부모로부터 원칙 없고, 강압적이며, 처벌 위주의 교육을 받은 남자아이는 반사회적 인격을 소유하거나 폭력행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환경적 요인도 인간 행동을 100% 좌우하지는 않습니다. 학대를 당했다고 모두 폭력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유전자 변이가 폭력성을 높인다는 생각은 분명 흥미로운 연구주제예요. 그렇지만 그것이 폭력성이 유일한 혹은 근본적 원인은 결코 아닙니다.”

By LOIS PARSHLEY

저작권자 © 파퓰러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만 안 본 뉴스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경기대로 15 (엘림넷 빌딩) 1층
  • 대표전화 : 02-6261-6148
  • 팩스 : 02-6261-6150
  • 발행·편집인 : 김형섭
  • 법인명 : (주)에이치엠지퍼블리싱
  • 제호 : 파퓰러사이언스
  • 등록번호 : 서울중 라 00673
  • 등록일 : 2000-01-06
  • 발행일 : 2017-11-13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노경
  • 대표 : 이훈, 김형섭
  • 사업자등록번호 : 201-86-19372
  • 통신판매업신고번호 : 2021-서울종로-1734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