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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암에서 배우는 암 정복의 길

  • 기자명 장일정 기자
  • 입력 2017.09.20 14:25
  • 수정 2017.11.23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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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기 로저스는 4살 때 아버지와 함께놀던 중 신장 파열 사고를 당했다. 그녀의 기억에 의하면 누워있던 부친을 향해 힘껏 달려가 뛰어넘었는데, 착지하자마자 심한 통증이 몰려왔다고 한다.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간 매기는 정밀검사를 받았고, 그 과정에서 담당의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통보를 받았다. 신장에서 야구공 크기의 종양이 발견된 것이다. 그녀는 빌름스종양이라고도 불리는 신아세포종 3진단을 받았다. 미국에서의 연간 진단율이 단 500여명에 불과한 소아 신장암의 하나였다.

의사들은 수술을 통해 신장의 파편과 종양을 함께 제거했다. 이후 매기는 방사선 치료는 물론 16개월간 수차례의 항암 화학요법도 받아야 했다. 어린 나이였기에 모든 상황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치료를 받을 당시의 일상은 상당부분 뇌리에 남아 있다. 그녀는 매주 어머니와 함께 화학 요법을 위해 병원을 갔고, 그때마다 부리토 가게에 들렸다. 부리토 말고는 먹고 싶은 음식이 없었던 탓이다.

시간이 흘러 6살이 되면서 매기는 조금씩 회복됐다. 머리카락이 자라났고, 병원을 찾는 주기도 길어졌다. 그렇게 오랜 시간 그녀와 가족들은 심적, 물적으로 많은 고통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살아남았고 지금은 성인이 되어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

매기처럼 암에 걸렸지만 의료진의 철저한 치료와 가족의 진심어린 보살핌을 통해 완치된 아이들은 미국에서만 수천 명이 넘는다. 1950년대 이후 모든 암의 완치율이 눈의 띠게 높아졌지만 그중에서도 소아암은 가히 독보적 수준이다. 환자의 무려 80%가 완치돼 정상생활로 복귀한다. 일반적인 암 환자의 완치 후 5년 이상 평균 생존율이 남성 66%, 여성 63%임을 감안할 때 놀라운 수치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차이는 어디서 생기는 걸까. 전문가들은 생물학적 요인에 일부 원인이 있다고 본다. 아이들이 걸리는 암이 따로 있고, 성인과 아이가 가진 면역체계의 힘도 다르다는 판단에서다. 또한 소아암 치료방식이 일반 암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도 유력한 원인의 하나로 꼽힌다.

최근 종양학자들이 이 점에 주목하고 소아암 의사들로부터 배울 점을 찾고 있다. 어쩌면 두 분야의 의사들이 협력해 모든 연령대에 적용 가능한 독성이 적은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 자연의 무작위적 실수

소아암과 성인암은 모두 유전자적 돌연변이의 산물이다. 이 돌연변이로 인해 세포가 통제 불능 상태로 성장하고, 인체의 다른 기능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성인 환자는 이 돌연변이를 가지고 태어나 환경적 영향이 더해지면서 암 발병으로 이어진다. 반면 아이들은 유전 요인만 있을 뿐 스스로 유발한 환경적 요인이 없다. 40년간 담배를 피우지도, 하루 한 병씩 독주를 마시지도, 수십 년간 육식에 집착하지도 않았다.

즉 소아암은 환경적 요인의 도움(?) 없이 유전자적 요인에 의해 생기는 질병이라는 부분에서 성인암과 생물학적 차이가 있다. 또한 성인암은 십여 개의 유전자 돌연변이가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소아암은 한 두 개의 돌연변이에 의해서도 발생할 만큼 메커니즘이 단순하다.

특히 대부분의 소아암은 혈액과 뼈, 신장, , 신경계 등 세포분열이 빠른 조직에서 발생한다. 이 조직들은 성인이 되면 활발히 성장하지 않기 때문에 동일한 부위에 생긴 성인암과도 종종 유전적 차이를 보인다.

덧붙여 대다수 성인암은 성장 속도가 느려 연간 1회의 건강검진으로도 발견할 수 있지만 빠르게 발육 중인 조직에서 발생하는 소아암은 성장 속도도 월등히 빠르다. 가미스 박사의 경우 매 8~12시간 마다 두 배로 커지는 종양을 본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뉴욕 장로병원의 소아혈액종양 및 줄기세포 이식 전문의인 앤드류 쿵 박사는 이런 생물학적 차이가 소아암의 치료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아이들은 신진대사가 빠른데다 다른 건강상 문제가 거의 없어 성인보다 훨씬 강한 치료를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80%에 이르는 높은 소아암 치료율에는 생물학적 요인이 기여하고 있다는데 많은 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다만 이를 성인 암의 치료에 적용하려면 이에 부합하는 효과적인 치료법을 알아내는 것이 먼저다.

▲대부분의 소아암 센터에서는 어린 환자들이 질병의 고통을 잊고, 밝고 활기차게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유명인과의 만남 등 다양한 이벤트와 파티를 열고 있다.
▲대부분의 소아암 센터에서는 어린 환자들이 질병의 고통을 잊고, 밝고 활기차게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유명인과의 만남 등 다양한 이벤트와 파티를 열고 있다.

■■■ 협업의 문화

1950~1960년대에 소아암 진단을 받은 아이는 거의 예외 없이 수개월 내에 숨졌다. 하지만 1950년대 후반 의학계는 방사능을 사용해 암 세포의 증식을 막을 수 있음을 알아냈다. 1960년대 초에는 수차례의 강력한 화학요법이 암의 재발을 막아준다는 것도 밝혀냈다. 덕분에 소아 백혈병만 해도 불과 한 세대의 시간 만에 치명적 불치병에서 대부분의 환자가 완치될 수 있는 병이 됐다.

이후 소아 종양학자들은 더 많은 아이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치료 기술의 개선과 새로운 치료법 개발에 매진했다. 화학요법에 따른 장기적 합병증을 줄일 수 있었던 것도 이 시기의 성과였다.

사실 소아암은 희귀병으로 전체 암 환자 중 비중이 0.5~4.6%에 불과하다. 발병률도 전 세계의 아이들 100만명당 50~200명 정도다. 그럼에도 소아 종양학자들이 연구 초기부터 만들어온 협업의 문화는 다른 의학 분야에선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다. 쿵 박사는 지난 30년 동안 협력 문화가 가장 큰 힘을 발휘한 것은 임상시험이라 말한다.

실제로 성인 암 환자의 임상시험 참여율은 단 5%에 지나지 않지만 소아암 환자들은 임상시험 지원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인다. 그로인해 소아암의 치료율을 높이고, 아이들의 삶의 질을 증진하고자 노력하는 많은 연구자와 연구소들이 학문의 경계를 허물고 협업할 수 있는 길이 열렸던 것이다.

그리고 소아 종양학자들은 서로 성과를 공유하고, 대화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음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협력이야 말로 희귀병 연구에서 중요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는 첩경임을 말이다. 최근 성인 암 연구자들도 조금씩 이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체계적 실험과 지속적 협력을 거쳐 도출된 소아암 치료요법들을 성인 암 치료에 접목하려 시도하고 있는 것. 수십년에 걸친 소아암 연구 성과의 혜택을 모든 암 환자들이 일정부분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 성과의 이면

20년 전 쿵 박사는 보스턴에서 급성 전골수성 백혈병(APL)이라는 희귀 백혈병에 걸린 키스라는 어린 아이를 치료하고 있었다. “APL은 치료가 비교적 용이한 백혈병이지만 그 아이는 치료 후 2년 만에 병이 재발했습니다. 이렇게 재발한 경우 치료가 훨씬 어려워집니다.”

의료진이 화학요법을 다시 시도할지, 아니면 한층 강도 높고 침습성이 강한 골수이식 수술을 권유할지를 놓고 고심하던 중 쿵 박사는 중국 한의학에 기반한 새로운 소아 백혈병 치료법에 대해 듣게 됐다. 0.25g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독성물질인 비소(As)를 유효성분으로 한 실험적 요법이었다.

처음에는 환자의 가족을 포함해 모든 사람들이 저희를 미쳤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치료 과정과 기대효과를 상세히 전해들은 가족들은 치료를 받기로 결심했고, 쿵 박사의 기대대로 키스는 다시 한 번 완치됐다.

호킨스 박사에 의하면 소아암 학계 외부의 사람들은 종종 소아암 치료에 평생을 바치는 것이 뭔가 우울할 것이라 여긴다. 호킨스 박사처럼 수백여 명의 헌신적이고 똑똑한 연구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소아암 치료법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은 발전이 정체돼 있었다. 임상시험에서의 협력은 여전히 활발하지만 임상시험 자체가 줄어든 것. 소아암은 희귀병인데다 여타 암보다 완치율이 매우 높아지면서 연구예산이 대폭 축소된 탓이다.

하지만 NCI의 맥컬 박사는 평균적인 완치율이 80% 선이라는 것일 뿐 일부 소아암의 완치율은 여전히 낮은 실정이라 강조한다. 예컨대 신경아세포종이나 골육종의 완치율은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39년간 전혀 발전을 이루지 못한 소아암도 있습니다. 여기서 만족하면 안돼요. 더 많은 연구자원이 지원되면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쿵 박사도 이에 동의한다전반적인 완치율이 높아졌고, 업계의 협력 네트워크가 탁월하다고 해도 관련연구와 예산의 수요는 아직 매우 높습니다. 나머지 20%의 환자들을 완치시켜야하고, 80%의 완치 환자들에게도 더 나은 치료법을 제시하기 위함이죠. 완치 환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암이나 암 치료로 인한 장기 부작용을 안고 살아가고 있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 부작용을 줄여라

대학 3학년 시절 매기는 교환학생으로 선정돼 체코의 프라하로 유학을 떠났다. 그런데 도착한 지 5일쯤 지나 갑자기 혈뇨가 나왔다. 신장 하나를 제거했기 때문에 혈뇨가 나온다는 건 정말 좋지 않은 상황이었어요.”

아직 룸메이트에게조차 자신이 과거 암 환자였음을 말하기도 전이었기에 그녀는 홀로 프라하의 병원에 며칠간 입원했다. 하지만 의료진이 원인을 찾지 못하자 그녀의 보험회사는 그녀를 미국으로 데려왔다.

문제는 신장과 방광을 연결하고 있는 요관(尿管)에 있었다. 주치의는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특정하지 못했지만 그녀가 어릴 적 받았던 항암치료가 원인일 것으로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항암 치료 외에는 증상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매기는 요관 제거 수술을 받아야 했다.

이후에도 매기는 살아가면서 건강상의 문제를 계속 겪었다. 어릴 적 방사선 치료를 받았던 복부에 피부암의 일종인 기저세포암이 수차례 발병했고, 22세 때는 자신이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입양이라는 차선책이 있었지만 아이를 가질 평범한 권리를 잃었다는 비참함이 오랜 기간 저를 괴롭혔습니다.”

쿵 박사는 치료율이 높아지면서 매기처럼 성인이 되는 소아암 환자가 갈수록 늘고 있음에 주목한다. 한 연구에서는 매년 만 20세가 되는 사람 중 소아암 생존자의 비율이 곧 0.5~1%에 이를 것이라는 추산을 내놓기도 했다. 이는 강력한 항암 치료로 인한 장기적 부작용 사례자들의 숫자가 지속 증가할 것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화학 요법에 쓰이는 약품 중 일부는 심장 기능에 영향을 미치거나 IQ와 집중력 저하 등의 신경학적 부작용을 일으킨다. 또 어릴 적 방사선 치료를 받은 여성은 유방암 발병률이 높으며, 일부 환자들은 불임 판정을 받기도 한다. 성장에 있어 중요한 시기에 유독한 화학물질과 에너지에 노출된 결과다.

물론 이제껏 의사들은 최소량의 약물과 방사능을 사용함으로써 부작용을 최소화하고자 다각적 노력을 전개해왔다. 그럼에도 현재 적용되는 치료법은 기본적으로 과거와 다를 바가 없다.

성배를 찾아야 합니다. 더 효과적이면서 부작용이 적은 치료법을 말이에요. 이 목표는 소아암 자체에 대한 생물학적 이해를 높여야만 달성할 수 있는 가치입니다.”

▲NBA 올스타 출신의 케빈 러브 선수가 세인트주드 아동병원을 찾아 환아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이다.

■■■ 새로운 무기들

쿵 박사가 말한 생물학적 이해는 이론상 암 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젖힐 열쇠가 될 수 있다. 이미 많은 소아 종양학자들이 기존의 치료법으로는 나머지 20%의 소아암 환자를 치료하는데 극명한 한계를 느끼고 있으며, 그 한계는 더욱 심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일부 소아 종양학자들은 오히려 성인 암 치료법에서 단서를 찾고 있다. 저분자 화합물 요법이 그것이다. 일례로 키나아제 억제제(kinase inhibitors)’ 는 암세포의 분열에 관여하는 키나아제 효소의 활성화를 억제하는 저분자 화합물 치료제로 성인 암 환자들에게 상당한 효과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 대상으로는 심도 깊은 연구가 이뤄진 적이 없다.

실험을 통해 효용성이 규명된다면 소아암 치료의 터닝포인트가 될지도 모릅니다.”

저분자 화합물과 함께 면역치료도 또 다른 유력한 후보다. 암세포를 공격하지 않는 암 환자의 면역체계를 개선,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맥컬 박사에 따르면 특정 백혈병의 경우 완치율이 90~100%에 달할 정도로 우수한 효과를 보이고 있다.

향후 이 같은 새로운 치료법이 완성되면 기존 치료법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까. 가미스 박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이들은 글자 그대로 신무기일 뿐입니다. 오랜 암 치료의 역사에서 우리는 각 치료법들의 흥망성쇠를 지켜봤습니다. 한 바구니에 모든 계란을 담는 일은 반드시 경계해야 합니다.”

한편 다우닝 박사를 비롯한 일련의 소아 종양학자들은 저개발국을 대상으로 한 치료법 보급에도 앞장서고 있다. 선진국과 달리 의료시스템이 열악하고 의약품 보급도 원활치 못한 저개발국은 소아암 완치율이 평균을 크게 밑도는 10~20%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가장 좋은 방안은 의료인들의 국내외적 협력을 증진시키는 것입니다. 선진국들이 완치율을 80%로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도 그 힘이었으니까요.”

분명히 오늘날의 소아암 환자들은 수십 년 전보다 나은 치료를 받고 있다. 또한 암을 이겨낸 환자들은 누구보다도 활발하고 긍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매기도 그랬다. 20대 중반이 된 그녀는 암과 투병하던 시절이 자신의 삶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대학에서 노인학을 전공한 것이나 유행병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것, 그리고 현재 말기 암 환자를 돌보는 비영리기구에서 일하는 것 모두 지적 호기심에 더해 암 투병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믿는다.

다만 이런 그녀도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암 경험을 얘기할 때 부작용에 대한 부분은 꺼내놓지 않는다.

사람들은 제가 완벽히 건강해졌다는 말을 원할 뿐 부작용에 대한 얘기는 듣고 싶어 하지 않을 테니까요. 제가 동정의 말을 듣고 싶지 않은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의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모든 소아암 환자들이 성인이 돼서도 부작용을 겪지 않는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By Alexandra Osso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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