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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아지는 비행기...밀도상승의 비밀

보잉 737은 13.5m 길어졌으나 좌석은 더 좁아졌다

  • 기자명 장순관 기자
  • 입력 2018.09.14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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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의 크기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러나 승객들의 공간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어떤 이유로 설명이 가능한 걸까?

그날의 비행은 평범했다. 기내는 만석이었고, 자리에 앉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긴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이번에도 머리 위 화물칸은 꽉 차 있었다. 그래서 나는 배낭을 앞자리 아래에 찔러 넣을 수밖에 없었다. 내 발이 들어가야 할 자리다. 내가 있는 자리는 31E번이었다. 양쪽에 한 사람씩이 앉아있는 자리였다. 내가 탄 항공기는 아메리칸 항공 2070편으로, 출발지는 피닉스, 도착지는 샌프란시스코였다. 옆자리 사람들이 팔걸이를 차지해 버렸으므로, 나는 양팔을 몸에 찰싹 붙여 무릎 위에 두고 내 좌석에 웅크려 있어야 했다. 이제 시작될 1시간 50분간의 비행이 편할 리가 없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정도는 평범한 비행이다.

필자의 덩치는 미국인 남성 평균 수준이다. 신장 180cm, 체중 78kg이다. 이 덩치를 좌석에 우겨넣던 필자는 배낭 안의 어떤 물건이 갑자기 필요했다. 몸을 앞으로 굽히자 필자의 머리는 앞좌석에 부딪쳤다. 그렇다. 몸을 펴는 것은 답이 아니었다. 이 좁은 공간에 적응해야 했다.

내 왼쪽에 앉은 사람은 매우 덩치가 컸다. 그가 앉은 좌석의 통로쪽 팔걸이 위에는 그의 푸짐한 뱃살 일부가 얹혀 있었다. 필자 쪽 팔걸이에도 그의 뱃살 일부가 얹혀 있었고, 필자의 무릎 위까지 넘어올 기세였다. 오른쪽의 좌석은 창문 쪽 좌석이었는데, 키가 작고 땅땅한 몸매의 사람이 앉아 있었다. 커다란 헤드폰을 쓴 그는 야구모자 챙을 깊숙이 눌러 쓰고 있었다.

필자는 어떻게든 조금씩 움직여 보려고 했다. 마치 트레일러를 병렬주차 하려는 운전자처럼 필자의 몸을 오른쪽의 키 작은 사나이의 다리 쪽으로 굽힌 다음, 고개를 왼쪽의 뚱뚱한 사나이 쪽으로 돌렸다. 갑자기 필자의 얼굴 앞에 뚱뚱한 사나이의 팔뚝이 날아왔다. 그는 급하게 팔을 뺐다. 필자는 사과를 하고 배낭 쪽으로 몸을 뻗었다.

필자의 발치에 놓인 배낭을 조심스레 찾는데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인체는 움직이고 싶어 한다. 그러나 항공기는 우리의 움직임을 허용치 않는다. 우리 모두는 타인의 공간을 침범하고 있다. 그리고 본능대로 움직이다가 팔꿈치나 머리를 어딘가에 부딪친다.

필자가 찾던 묵직한 사각형 금속 물체인 줄자를 찾아낼 때까지도 그 아기는 계속 울고 있었다. 필자는 일어나 앉아서 줄자를 들고 측정을 시작했다. 앞자리와 필자의 무릎 사이의 거리는 13cm가 미처 되지 않았다. 그리고 옆자리 두 팔걸이 사이의 거리, 그러니까 필자가 앉아 있는 자리의 폭은 44cm. 뚱뚱한 사나이가 그 모습을 보고 눈썹을 실룩거렸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필자는 양 팔꿈치가 들어가야 하는 곳의 폭도 재려다가 창가 쪽 사람과 몸을 부딪쳤다. 그는 뭐라고 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50cm가 좀 안 되는 것 같았다.

현대의 항공 여행은 이렇게 비좁은 좌석을 감내해야 한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항공기의 크기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필자가 타고 있는 에어버스 A321 기종의 기체는 앞선 기종인 A320보다 7m나 길다. 항공기가 크면 더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고, 항공사는 더 큰 이익을 창출한다. 각 항공사의 주력 기종들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아메리칸 항공을 포함해 모든 항공사에서 공통이다. 보잉 737은 세계에서 제일 많이 운용되는 여객기다. 이 항공기는 처음 생산될 때에 비해 13.5m나 길어졌다. 그런데 승객들은 갈수록 더 좁은 공간을 참아내야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항공사 입장에서 보면 더 큰 항공기가 더 넓은 1인당 공간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항공기가 커지는 속도보다 객석이 늘어나는 속도는 더욱 빨랐고, 그만큼 1인당 공간은 줄어들었다. 예를 들어 2017년 아메리칸 항공이 A320에는 이코노믹석 6, A321에는 9, 보잉 737-800에는 12개를 추가하려던 계획이 폭로되었다. 제트블루는 A320의 객석 수를 12, 델타 항공은 10개 늘리려 한다고 한다. 유나이티드 항공도 2020년까지 모든 기종의 객석 수를 늘릴 가능성이 높다.

항공사의 세계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밀도 상승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바보 같은 표현이다. 밀도 상승은 승객들에게는 악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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