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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여우 길들이기...개의 진화에 관한 연구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했던 동물 진화 실험을 기록한 과학 논픽션

  • 기자명 이고운 기자
  • 입력 2018.11.06 10:53
  • 수정 2018.11.06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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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여우 길들이기

 


이 책은 40년 전 유전학계를 뒤흔들 정도로 큰 충격을 주었던 은여우 가축화 실험에 얽힌 모든 이야기를 소개한다. 구소련 시절 스탈린의 눈을 피해 외딴 여우 농장에서 비밀리에 시작되어 오늘날까지도 진행되고 있는 이 프로젝트는 개의 진화에 관한 연구 가운데 가장 유명한 실험이다. 이 실험을 기획한 벨랴예프는 선별적인 교배를 통해 사나웠던 여우를 불과 6년 만에 귀엽고 순한 여우로 가축화시킴으로써 늑대가 개로 진화한 과정을 재현하는 데 성공하였다.

은여우 가축화 실험이 전 세계에 알려진 지는 오래되었지만 이 실험의 전모를 낱낱이 밝히어 보여주는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과학 교양서이지만, 목숨을 걸고 실험을 이끌어가는 과정은 첩보 스릴러를 읽는 긴장감을 주며, 여우와 인간이 친구가 되는 과정은 마치 《어린왕자》 우화를 읽는 것 같은 감동을 선사한다.

1950년대 시베리아에서 시작된 비밀 실험

1959년 소련, 춥고 황량한 시베리아 벌판으로 향한 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정체는 유전학자 드미트리 벨랴예프와 류드밀라 투르트. 시베리아에 도착한 이들은 곧바로 비밀 프로젝트에 착수한다. 이름하여 '은여우 가축화 실험'.

실험의 방식은 간단했다. 농장의 여우들이 보이는 행동을 관찰한 뒤, 가장 온순한 여우들만을 골라 교배하는 방식이었다. 이 실험은 ‘늑대는 어떻게 개로 진화할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에서 시작됐다. 그 진화의 과정을 밝혀내고 싶었던 이들은 늑대와 유전적으로 가까운 사촌인 은여우를 대상으로 가축화 실험에 돌입했다.

당시 소련 과학계를 지배하고 있었던 전연방 농업과학 아카데미 총재 리센코는 유전학을 대대적으로 탄압했다. 그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유물론에 입각해 서구 유전학을 자본주의 부르주아 과학이라 규정하고 비난했다. 자신의 학설에 반대되는 과학자들을 '반동분자'로 몰아 숙청시키는 바람에 벨랴예프 역시 자신의 형을 잃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그들이 시베리아까지 가서 모피 생산량 증가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위장한 채 은여우 실험을 시도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꼬리를 흔드는 여우가 탄생하다

당시 가축화가 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이 실험을 기획한 벨랴예프도 자신이 살아생전에 그 결과물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험의 결과는 놀라웠다. 실험에 착수하고 6세대 만에 여우들에게 눈에 띄는 변화가 관찰되기 시작했다. 꼬리가 위로 말리고, 귀가 접히며, 얼룩무늬 털을 가진 새끼가 태어나는 등 가축화된 동물의 외형적 특징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꼬리를 흔들고 애교를 부리는 등 성격에서도 점점 개의 특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인간과 동거하면서 집 주변을 경계하며 낯선 이를 향해 짖는 여우도 나타났다. '여우도 개처럼 길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이 비로소 증명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황폐해진 소련 유전학계의 등불이 되다

은여우 가축화 실험은 불활성 유전자의 존재를 알리는 진화론적으로 중요한 실험이다. 기존에 없던 돌연변이가 등장해 진화를 앞당기는 것보다 이미 있던 유전자가 활성화되면서 진화를 촉진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지 인간이 우호적인 개체를 선별한 것만으로 불과 몇 십 세대 만에 가축화의 중요한 특징들을 은여우에게서 볼 수 있었다.

이 성과가 서방에 알려지자 유전학계에는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브리태니커는 벨랴예프에게 1974년판 사전에 가축화에 관한 에세이를 기고해달라고 제안했다. 벨랴예프는 이 실험을 계기로 냉전으로 막혔던 서방세계와 소련 과학계 간의 교류에 물꼬를 텄고, 소련의 국제 유전학회 개최를 주도하며 소련 과학계의 부활을 이끌었다.


과학에세이, 첩보소설, 어린왕자의 우화가 결합된 흥미진진한 장편 드라마

이 책은 은여우 가축화 실험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최초로 공개하는 과학 교양서다. 동시에 첩보물과 우화가 결합된 한 편의 장편 드라마이기도 하다. 소련 당국의 감시를 피해 목숨을 건 실험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에피소드들은 마치 첩보 영화를 방불케 하며, 정치가 과학에 개입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경고한다. 또한 사납던 여우가 점점 경계심을 풀고 인간과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은 마치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의 한 장면을 읽는 것 같은 감동을 준다.

그리고 구소련의 붕괴 이후 재정 지원이 끊겨 수십 년간 진행되어 온 실험이 존폐의 위기 순간에 연구소 직원들의 헌신과 노력, 그리고 이 실험을 지원하는 세계 각지에서 밀려든 후원의 물결로 회생하는 모습은 깊은 울림을 준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은여우 가축화 실험이 진화론을 증명한 중요한 실험일 뿐 아니라 온갖 탄압과 역경에 굴하지 않고 마침내 커다란 과학적 성과를 성취해낸 위대한 실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루이빌 대학 생물학 교수. 동물의 사회적 행동 진화를 중심으로 연구하는 행동생태학자이다. 전 세계 100여 곳 이상의 대학에서 강연을 했고, 진화와 행동에 관한 150여 개 이상의 논문을 썼다. 주요 저서로는 《이타심 방정식》, 《제퍼슨 씨와 거대 무스》, 《동물행동의 원리》, 《동물들 간의 협력》 등이 있다.

 

지은이_리 앨런 듀가킨

루이빌 대학 생물학 교수. 동물의 사회적 행동 진화를 중심으로 연구하는 행동생태학자이다. 전 세계 100여 곳 이상의 대학에서 강연을 했고, 진화와 행동에 관한 150여 개 이상의 논문을 썼다. 주요 저서로는 《이타심 방정식》, 《제퍼슨 씨와 거대 무스》, 《동물행동의 원리》, 《동물들 간의 협력》 등이 있다.


지은이_류드밀라 트루트

시베리아 노보시비르스크에 있는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세포학·유전학 연구소 소장이자 진화생물학 교수. 1959년부터 은여우 가축화 실험에 참여했고, 현재는 연구소 팀원들과 함께 은여우, 밍크, 수달, 회색쥐 등을 대상으로 가축화 초기에 나타나는 유전적 변이를 연구하고 있다.

옮긴이_서민아

대학에서 경영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했다. 옮긴 책으로 《인간은 개를 모른다》, 《비트겐슈타인 회상록》, 《플랫랜드》, 《키라의 경계성 인격장애 다이어리》, 《고릴라 이스마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프랑켄슈타인》, 《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 등이 있다.


리 앨런 듀가킨·류드밀라 트루트 지음, 서민아 옮김 도서출판 필로소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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