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머리에 쓰는 관은 권위와 지위를 나타냈다. 관이 크면 높은 지위를 가진 고관대작으로 명예와 존경을 받았다. 현대 사회로 오면서 머리 위에 쓰는 것으로 나타내는 것은 보통 상품명이나 응원하는 스포츠팀들이다.
그런데 유독 높은 관과 같은 모자를 쓰고 사용하는 곳이 아직 남아있다. 맛난 음식을 만들고 고객을 기쁘게 하는 요리사 세계다. 주방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연극 소재로 삼아 오랫동안 시민의 사랑은 받아온 ‘난타’란 공연에서도 출연 배우들은 하나 같이 흰옷에 높은 하얀 모자를 쓰고 있다. 주방장같이 높은 사람만 쓰는 것이 아니었나? 사실 여기에도 과학이 숨어있다.
요리사의 복장 중에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비정상적으로 길쭉하고 높은 모잔데, 이 모자의 정식 이름은 ‘토그 브란슈’다. 동작도 많고 바쁜 주방에서 쓰기에는 여간 불편해 보이지 않는다. 요리사가 이런 모자를 쓰게 된 이유에는 우선 위생 문제가 얽혀있다.
영국 헨리 8세 시절, 국왕이 음식을 먹다가 수프에서 그만 왕실 요리사의 머리카락 하나를 발견했다. 분노한 헨리 8세는 요리사를 사형시키고 재발 방지를 위해 머리에 모자를 쓰도록 했다. 위생을 위한 모자의 필요성을 인정한 요리사들이 이후로 음식을 할 때 모자를 쓰고 일을 했다. 그런데 주방은 음식을 하면서 필수적으로 불을 다뤄야 하는 몹시 더운 곳이다. 요리사들은 위생을 위해 모자를 썼지만 덥고 땀이 많이 흘러 어려움을 겪었다. 요리사들의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통풍이 잘 되도록 고안한 모자가 토그 브란슈다. 덕분에 요리사들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주방에서도 땀을 줄이고 요리를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물론, 멋 때문에 요리사 모자가 쓰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프랑스 천재 요리사 ‘앙토넹 카렘’이 만들었다는 설이다. 19세기 초 프랑스 요리를 새롭게 정립했다고 평가받는 그는 주로 프랑스 고관대작과 영국, 러시아 등 외국 귀빈의 요리를 담당했다. 어느 날 한 손님이 길쭉한 하얀 모자를 쓰고 그의 식당을 방문했는데, 모자가 멋있다고 생각한 카렘은 요리를 만들 때 모자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모습이 요리사들 사이에 소문나면서 하나의 문화로 정착됐다는 이야기다.
주방에서 요리사가 요리하면서 쓰는 모자에 위생에 관련된 과학적 이유가 있긴 하지만, 요즘엔 길쭉한 모자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보통 목에 매는 머플러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