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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은 소설보다 먼저 과학 실험에 의해 시도 되었다

죽은 생명체를 전기로 부활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과학자들

  • 기자명 이고운 기자
  • 입력 2018.12.13 15:10
  • 수정 2018.12.13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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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프랑켄슈타인으로 분장한 배우 보리스 칼로프

 

1803117, 런던 뉴게이트 교도소에서 조지 포스터라는 젊은이가 살인죄로 교수형을 당했다. 형 집행 후 그의 시신은 격식을 갖추어 시내로 운구되어 왕립 외과 대학으로 보내졌다. 보통 이런 시신은 공개 해부가 진행된다. 그러나 포스터의 시신은 실제로는 전기충격 실험을 받게 된다.

 

이 실험을 진행한 인물은 이탈리아 자연철학자 지오바니 알디니. 1780년 동물 전기를 발견한 루이지 갈바니의 조카다. 동전기학의 영어 명칭 galvanism도 갈바니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것이다. 알디니는 포스터의 시신을 판 위에 눕히고 조수들과 함께 실험을 시작했다. 당시 <더 타임즈> 지의 보도를 살펴 보자.

 

먼저 얼굴에 전류를 통해 보았다. 죽은 사형수의 턱이 떨기 시작하고, 턱에 연결된 근육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시신의 한쪽 눈이 떠졌다. 시신은 이후 오른손을 들고, 오른손을 꽉 쥐기도 했다. 다리를 움직이기도 했다.

 

실험 장면을 참관했던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 내일이면 다시 살아날 것 같았다.”고 전했다.

 

전기와 생명 활동 간에 매우 깊은 연관이 있다는 생각은 알디니가 이 실험을 하기 최소 100년 전부터 존재했다. 1700년대 초반 아이작 뉴턴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1730년 영국 천문학자이자 염색공인 스티븐 그레이는 전도의 원리를 시연해 보였다. 어느 고아 소년을 비단 밧줄로 묶어 허공에 매단 다음, 양으로 대전된 관을 소년의 양 발에 대어, 발을 음으로 대전시켰다. 그러자 소년의 다른 신체 말단은 양으로 대전되었다. 근처의 낙엽이 소년의 손가락에 들러붙을 지경이었다.

 

1746년 프랑스에서는 장 앙투앙 놀레가 베르사이유 궁전 앞마당에서 근위병 1개 중대 180명을 동시에 실험 했다. 라이덴 병(당시의 전기 저장 도구)에서 나온 전기를 근위병들의 몸에 흐르게 했기 때문이었다.

 

알디니가 이 실험을 한 것은, 알레산드로 볼타 같은 사람들의 공격을 당하던 갈바니 이론의 타당성을 입증하기 위해서였다. 볼타는 동물 전기는 생체 조직이 아니라 금속의 접촉으로 생성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갈바니의 이론을 지지하는 여러 자연철학자들도 있었다. 알렉산더 폰 훔볼트는 동물 조직으로만 만들어진 배터리를 가지고 실험했다. 요하네스 리터는 전기가 감각에 미치는 영향을 알기 위해 자가 전기 실험을 하기도 했다.

 

전기가 생명의 속성이며, 전기를 이용하면 죽은 생명체도 부활시킬 수 있다는 사고방식은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작가인 메리 울스톤크래프트 셸리의 주변인들에게도 친숙했다. 그녀의 친구인 영국 시인 새뮤엘 테일러 콜리지는 생명과 전기의 관계 탐구에 매혹되어 있었다. 콜리지의 친구인 화학자 험프리 데이비는 런던 왕립 연구소에서 강연을 했다. 이 강연을 들은 콜리지는 데이비에게 이런 편지를 써 보냈다. “자네의 강연을 들으니 내 근육이 마구 움직이는 느낌이었다네. 마치 자네가 내 근육에 아연을 입힌 다음 전류를 통하는 것처럼 말이지.” 1816년 메리 셸리의 남편이 되는 퍼시 비시 셸리 역시 동전기학 실험의 열성 팬이었다.

 

핵심 지식

알디니의 실험은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어떤 사람들은 전기로 시체를 부활시킬 수 있다는 발상을 조롱했다. 알디니가 시체를 살려내 케이퍼나 자르게 할 거라면서 비웃었다. 하지만 이 발상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인 사람도 있었다. 알디니의 실험에 조수로 참여했던 강사 찰스 윌킨슨은 동전기학이야말로 생기를 불어넣는 학문이다. 물질과 영혼을 구분 짓고, 거대한 창조의 사슬을 이루어 육체와 생명을 연결하는 원리를 알아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1814년 영국 의사 존 애버네티 역시 왕립 외과 대학에서 매년 열리는 헌터 학파 강연회에서 이런 류의 주장을 했다. 그의 주장을 들은 동료 의사 윌리엄 로렌스는 애버네티와 격론을 벌였다. 애버네티는 전기나 그 비슷한 것이야말로 생명력이라고 주장한 반면, 로렌스는 생명 현상을 설명하는데 생명력 같은 개념은 불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메리와 퍼시 셸리 부부 역시 이 논쟁을 알고 있었다. 로렌스가 그들 부부의 주치의였기 때문이다.

 

<프랑켄슈타인>이 출간되던 1818, 독자들은 생명이 전기에 의해 탄생되고 복원될 수 있다는 개념에 익숙해 있었다. 이 책이 등장한 지 몇 달 후에 스코틀랜드의 화학자 앤드류 유리가 살인죄로 사형당한 매튜 클라이즈데일의 시신에 전기 실험을 했다. 유리는 이런 기록을 남겼다. “시신에 전류를 통하자 모든 표정근이 무섭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살인범의 얼굴은 분노, 공포, 절망, 고뇌, 무시무시한 미소가 합쳐진 끔찍한 표정을 보여주었다.”

 

유리는 이 실험 광경이 너무나도 무서웠던 나머지 일부 참관인들이 실험이 이루어지던 아파트를 도망쳐 나왔으며, 어떤 남자는 기절했다고 기록했다. 유리가 소설 <프랑켄슈타인>에서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아 이 실험을 실시했는지 상상해 봄직하다. 유리의 실험 기록은 분명 이 실험의 무시무시한 부분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들어가 있었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프랑켄슈타인>은 환타지 소설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와 처음 출간되었을 때의 독자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늘날의 모든 사람들이 인공지능에 대해 알고 있는 것처럼, 당대의 독자들은 동전기학의 가능성을 믿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 인공지능이 다양한 반응과 논의를 불러 일으키는 것처럼 당대의 동전기학과 셸리의 소설 역시 그랬다.

 

소설 <프랑켄슈타인> 이면의 과학을 보면 오늘날의 과학적 논쟁도 역사가 길며, 그 역사가 지금의 논쟁을 여러 측면에서 지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세기의 사람들은 과학기술로 이루어진 별세계 같은 미래가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프랑켄슈타인> 같은 소설에서 저자들은 당시 알고 있던 과학적 지식을 동원해 미래를 상상했다. 그런 소설들은 미래를 생각하는 새로운 방식의 중요한 소재였다.

 

소설 <프랑켄슈타인> 이면의 과학은 1818년 당시만 해도 매우 현실적으로 여겨졌다. 그 점을 감안한다면 미래에 찾아올 수 있는 가능성과 위험성에 대해서도 더욱 신중을 기해 생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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