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UPDATED. 2024-04-19 11:45 (금)

본문영역

일회용품 없이 커피를 마시자....보틀 팩토리 정다운 대표

쓰레기 여행이 가져다 준 충격...일회용품 없는 삶을 위한 실험

  • 기자명 이동훈 기자
  • 입력 2018.12.13 17:13
  • 수정 2018.12.13 18:02
글씨크기
보틀팩토리의 입간판. 일회용품 없는 삶으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실험 공간이다.

[파퓰러사이언스 이동훈 기자] 연희동에 위치한 카페 '보틀팩토리'는 여러 모로 특이하다. 대부분의 카페들은 좁은 공간에 최대한의 손님을 받으려고만 한다. 그러나 이곳은 상당히 여유 있는 공간과 아름다운 인테리어를 자랑한다. 하지만 정말 놀라운 부분은 주문을 할 때부터 시작된다.

정다운 공동대표(38세, 이하 정 대표)가 내민 메뉴판은 다른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각 잡힌’ 물건이 아니었다. 마치 학교 축제 주점에서 급조한 메뉴판 마냥 조금 두꺼운 용지에 손 글씨로 메뉴 이름과 가격이 적혀 있을 뿐인 물건이었다. 음료가 약간 튀어 있었지만 메뉴판은 이것 한 장 뿐이고 여분은 없다고 했다(취재 후에는 출력물로 바꿨다고는 한다).

일회용품을 배격하고 사소한 것 하나부터 환경을 생각하는 이곳, 보틀팩토리의 강렬한 첫 인상이었다. 여타 카페와 다른 부분은 계속 이어졌다. 계산을 해도 손님이 요청하지 않으면 종이 영수증을 주지 않는다. 아니, 아예 출력하지 않는다. 영수증을 만드는 데 드는 자원을 절약하기 위해서란다. 음료는 무조건 다회용 컵에 담아 제공된다. 빨대도 없다. 빨대 역시 손님이 요청해야 나온다. 그 빨대조차 유리나 금속 등의 재질로 만들어진 다회용이다.

이 가게에서 테이크아웃을 하겠다고? 그러면 음료는 일회용 컵이 아닌 텀블러에 담겨 나온다. 물론 다 마시고 나서 다시 여기 돌아와 반납해야 한다. 테이크아웃 시 빨대는 생분해되는 쌀 빨대가 나온다. 일회용품 가득한 카페 문화에 익숙해졌던 현대인들에게는 실로 문화충격일지도 모르는 이 가게. 명실공히 일회용품 없는 커피 문화를 열어가기 위한 실험 장소다.

보틀팩토리의 정다운 공동대표

쓰레기 여행이 가져다 준 충격

서울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한 정 대표가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발단은 사소했다. 과거 디자인 회사를 다니면서 동료들과 함께 커피를 많이 마셨는데, 그 때마다 많은 테이크아웃 컵 쓰레기가 발생했다. 한눈에 봐도 이건 감당할 수 있는 양이 아니라는 느낌이 확 왔다. 과연 일회용품 없이도 커피를 즐길 수 있는지를 알고 싶었다. 그래서 2016년, 본인의 작업실에 팝업(비상설) 카페를 차렸다.

이 팝업 카페에서 진행한 실‘ 험’의 규모는 점점 커졌다. 특히 작년에 '쓰레기 여행'을 다녀온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재활용 쓰레기는 때로는 골목이 막힐 정도로 넘쳐 흐르고 있다. 또한 아파트와는 달리 단독주택에서는 재활용 쓰레기 분리 배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버려진 일회용 플라스틱 컵들이 과연 제대로 재활용이 되고 있는지 궁금했다. 버려진 테이크아웃 컵을 따라 '쓰레기 여행'을 가 본 결과, 테이크아웃 컵, 아니 폐플라스틱 제품 전반의 재활용 실태는 생각 이상으로 심각했다.

생활 속에서 배출되는 플라스틱의 종류는 약 70여 종, 이 중 대부분이 재활용이 불가능하여 연료 목적으로 소각하는 것 외에는 쓸모가 없다고 한다. 재활용 가능한 플라스틱은 10여 종에 불과하다. 일단 테이크아웃 컵과 같은 시트류 플라스틱 역시 기술적으로는 재활용이 되기는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렵다.

가장 큰 이유는 경제 논리다. 우선 시트류는 PET 등과는 달리 환경분담금 품목이 아니다. 그리고 PET처럼 많은 양이 배출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윤을 중시하는 재활용 업체 입장에서는 그리 적극적으로 재활용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재활용 업체에는 너무나도 많은 재활용 쓰레기가 들이닥치는데, 그것을 일일이 꼼꼼하게 다 골라내고 분류하기에는 재활용 업체의 인력과 장비가 태부족이다. 따라서 수거된 테이크아웃 컵 중 상당수가 제대로 분류되지 못하고 소각처리를 당한다. 시트류는 재활용하기에는 물성이 좋지 않다. 긴 섬유를 뽑기 힘들다. 그리고 이것이 PET 등 다른 플라스틱과 섞여 재활용되면 그 재활용 제품의 물성까지 나빠지기 때문이다.

일단 분류되어 재활용 공정에 들어간 테이크아웃 컵들의 여정도 순탄치만은 않다. 일단 이것들을 색상별로 분류해서 세척 파쇄, 플레이크화해야 한다. 색상별로 분류하는 이유는, 색상이 투명할수록 재활용 시 원하는 색을 자유롭게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활용이 잘 되는 시트류 플레이크는 주로 투명과 녹색이다. 그런데 테이크아웃 컵에는 유성 잉크로 로고가 인쇄되어, 녹이면 완전 투명이 아닌 탁한 색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만큼 상품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무튼 이 플레이크를 녹여 섬유를 뽑아 충전솜, 부직포, 자동차 바닥재 등의 제품을 만든다. 그러나 여기까지 살아남는 테이크아웃 컵의 비율은 아무리 높게 잡아도 5%에 불과하다.

이것도 사실 완전히 믿을 수 없는 것이, 매장에서 직접 수거해 재활용 업체로 보내는 물량만 집계가 가능하고, 손님들이 들고 나가서 버리는 테이크아웃 컵의 운명은 집계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버린 테이크아웃컵이 모두 적절하게 분류되어 깔끔히 재활용될 거라는 생각은 환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문제는 계속 남는다. 폐플라스틱으로 만든 섬유 제품은 세탁 시 미세플라스틱이 나와 바다로 흘러들고, 이를 바다 생물이 섭취한다. 그리고 앞서도 말했듯이 재활용 산업도 철저한 경제 논리의 지배를 받는다. 시장은 수요를 초과하는 양의 재활용 제품을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결국 아무리 잘 재활용했더라도, 시장에서 사가지 않으면 또 버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일회용품을 덜 쓰고, 덜 버리는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정 대표의 뇌리에 갈퀴 달린 침처럼 단단히 박혔다.

(위) 테이크아웃 고객들을 위한 보틀팩토리 텀블러
(아래) 보틀팩토리에서는 빨대도 플라스틱이 없다. 좌로부터 유리 빨대, 금속 빨대, 빨대 세척용 솔, 쌀 빨대

일회용품 없는 삶을 위한 실험

이후 2018년 5월 정식 개장한 보틀팩토리에서까지, 일회용품을 없애고 쓰레기를 줄이려는 정 대표의 실험은 계속되고 있다. 매장 내에서 일회용품을 쓰지 않는 것은 물론, 이제는 외부 행사의 케이터링도 지원하면서 다회용 텀블러를 공급하고, 행사 후 수거해 세척하는 등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지난 11월 1일 열린 '환경과 지속가능성 컨퍼런스'에도 텀블러 300개를 지원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실험은 그동안 어떤 성과를 거두었을까.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 정 대표의 설명이다. 지난 9월에는 SNS로 텀블러 기부신청을 하자, 무려 600개의 텀블러가 모였다고 한다. 또한 고객들의 반응도 매우 호의적이었다. 인상적인 것은 노인들일수록 더욱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 분들이 젊었을 때는 일회용품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고, 따라서 일회용품 없는 삶에 그만큼 익숙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 대표의 분석이다. 다만 이 카페가 위치한 곳이 상권이 작은 주택가고, 테이크아웃 고객이 많은 도심지가 아니기 때문에 이 곳의 성공담을 섣불리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지도 모른다.

또한 텀블러를 이용한 테이크아웃 시스템을 더욱 가다듬는 것도 숙제다. 고객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고 텀블러 사용을 유도하고, 보증금을 징수하고, 텀블러를 반납받으면 보증금을 환급해주며 텀블러를 세척 및 정비하는 데 까지 이르는 전 시스템을 합리적으로 구축해야 하는 것이다. 한 가지만 보더라도, 아직 이 카페에는 카페 업무시간 종료 후 빈 텀블러를 회수받는 시스템이 없다. 과거 비디오 가게의 비디오 테이프 반납함같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텀블러의 규격도 죄다 제각각이라, 분해 세척 및 재조립도 비효율적이다. 또한 사용한 텀블러를 확실히 반납받기 위한 도서관형 고객 관리 시스템, 고객들에게 성취감을 주는 게임화 앱 등도 필요하다고 정 대표는 이야기했다. 그래도 업무 종료 후라도 텀블러를 봉지에 담아 문고리에 걸어놓는 충성스러운 고객들까지 있다고 한다.

지난 8월 1일부터 커피전문점 점포 내에서는 테이크아웃 컵의 사용이 정책적으로 금지되었다. 정 대표는 이러한 정책을 크게 환영했다. 점포 내에서 일회용품을 쓰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고, 이를 정책적으로 규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신규 노동력을 채용하기 어려워진 업주 입장에서는, 사용한 다회용 컵을 철저하게 세척해 다시 내놓는 것이 부담스럽고 비위생적일 수도 있다. 그리고 다회용 컵의 세척에도 결국 환경을 파괴하는 세제가 쓰이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다. 컵의 파손 및 분실이 업주에게 부담이 되고, 고객이 나가서 먹겠다고 하고 일회용 컵에 음료를 담아 점포 내에서 먹는 등 규제를 지키지 않으면 업주만 처벌받는 점을 문제삼기도 한다. 하지만 정 대표는 이러한 비판들의 대부분은 크게 와닿지 않는다고 일축한다. 그렇게 따지면 왜 가정과 음식점에서는 일회용 식기를 쓰지 않는가? 다른 사람이 입에 넣은 숟가락과 젓가락을 어떻게 내 입에 넣을 수 있는가? 또한 일회용품의 재활용에는 다회용품의 세척과 정비보다도 더욱 큰 에너지와 자원이 필요하다. 쓸데 없이 일회용품을 많이 사용해 온 지금까지의 관행이 잘못된 것이고, 이러한 관행을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진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 대표의 의견이다. 스타벅스 등 대형 커피 전문점일수록 정책 변경 이후 매장에서 일회용품을 몰아내는 데 더욱 적극적이었다는 점도 지적했다.

실생활에서도 쓰레기를 가급적 배출하지 않으려는 정대표. 그는 누구도 플라스틱 쓰레기의 심각한 실태를 모르고 있다는 점을 다시금 강조했다. 또한 영원히 썩지 않는 플라스틱으로 일회용품을 만든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이라는 것도 강조했다. 석기와 청동기, 철기를 넘어 플라스틱기에 돌입한 인류. 이미 바다 한복판에 거대한 플라스틱 쓰레기 섬이 생길 정도로 플라스틱 쓰레기는 인류와 동식물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한 현실에 경각심을 다시 일깨우며, 정 대표의 실험이 앞으로도 계속 성공적인 결과를 얻기를 바래 본다.

저작권자 © 파퓰러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만 안 본 뉴스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경기대로 15 (엘림넷 빌딩) 1층
  • 대표전화 : 02-6261-6148
  • 팩스 : 02-6261-6150
  • 발행·편집인 : 김형섭
  • 법인명 : (주)에이치엠지퍼블리싱
  • 제호 : 파퓰러사이언스
  • 등록번호 : 서울중 라 00673
  • 등록일 : 2000-01-06
  • 발행일 : 2017-11-13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노경
  • 대표 : 이훈, 김형섭
  • 사업자등록번호 : 201-86-19372
  • 통신판매업신고번호 : 2021-서울종로-1734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