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뿐만 아니라 많은 사회적 동물들이 다른 개체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살아갑니다. 상호작용을 할 때 우리는 여러 개체를 ‘서로 다른 개체’로 인식하고 해당 개체와 관련된 정보를 기억에서 꺼내죠. 그리고 그 개체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추가하여 통합합니다.
이러한 능력은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데 기본이 되지만 아직까지 이 과정이 뇌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명확히 밝혀진 바는 없습니다.
그런데 1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기초과학연구원의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이도윤 연구위원 연구팀이 생쥐 행동 실험과 뇌신경 이미징 기술을 이용해 상대방이 누구인지 인식할 때 활성화되는 ‘개체 인지 신경 세포’와 ‘인식된 개체와 관련된 가치 정보를 처리하는 신경 세포’가 해마의 CA1 영역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규명했습니다.
이번 연구는 생쥐의 도움을 받았는데요. 연구진은 생쥐가 개체 간 차이를 구분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행동 실험 장치를 새롭게 고안했습니다.
실험 대상 생쥐 앞에는 회전하는 원판이 있습니다. 원판 위에는 두 개의 방이 있고 각각 생쥐가 한 마리씩 자리하고 있습니다. 실험 대상 생쥐는 무작위 순서로 이 두 마리의 생쥐 중 한 마리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특정한 한 마리를 만났을 때만 보상으로 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이런 실험을 일명 ‘GO-NOGO’ 실험이라고 하는데요. 연구진은 이 실험을 통해 실험 대상 생쥐가 개체를 구분하는지 확인하고 실험 동안 생쥐의 뇌신경 세포 활성을 분석했습니다.
구별해야 할 두 마리의 생쥐는 형제로 성별, 연령 및 유전적 구성이 동일하고 실험 대상 생쥐와 동일하게 친숙했기 때문에 오로지 개체의 고유한 특성에 따라 생쥐를 구별해야 했습니다.
실험 결과 뇌의 해마 CA1 상단부 영역이 기능하여 생쥐가 짧은 시간 상대의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개체를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기존 연구는 해마 CA2 상단부 영역과 CA1 하단부 영역에 집중되었고 상단부 CA1 영역은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보고도 있었는데 이번 연구에서는 CA1 상단부 영역이 중요하게 기능한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죠.
해마는 대뇌변연계의 양쪽 측두엽에 있는 너비 약 1cm, 길이 약 5cm의 길다란 모양을 한 기관으로 CA1, CA2, CA3 세 영역으로 나뉩니다. 해마는 동기, 감정, 학습, 기억 등을 담당하는 변연계의 필수적인 부분입니다.
연구진이 해마 CA1 영역에 신경 억제 물질을 주입했을 때 실험 대상 생쥐는 자신이 만나는 쥐들을 구별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연구진은 2광자 현미경으로 뇌 심부의 신경 세포 활성을 실시간으로 관찰해 서로 다른 생쥐를 구별해 인지하는 신경 세포가 CA1 영역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곳에 개별 개체와 연관된 가치 정보를 처리하는 신경 세포도 존재한다는 것을 밝혀냈죠. 사회적 경험에 대한 개인의 주관적 평가를 상대방(특정 개인)의 가치 정보와 연관시키고 그 가치를 갱신하는 것은 사회적 관계 형성에 중요한 능력입니다.
그런데 이 신경 세포들은 실험 대상 생쥐가 생쥐 이외의 자극과 접촉했을 때는 활성화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연구에서 실험 대상 생쥐는 다른 생쥐들을 만나는 대신 냄새 자극을 받았는데요, 이때는 CA1 신경 세포들이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뇌에서 다양한 자극과 가치 정보를 연관시키는 작업이 일어나더라도 사회적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 다른 생쥐라는 자극이 있을 때 가치 정보를 갱신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해마 CA1 영역이 사회적 연관 기억 형성에 선택적으로 기능한다는 것이죠.
이번 연구를 이끈 이도윤 연구위원은 “긍정적 또는 부정적 상호작용을 통해 얻은 개인에 대한 가치 정보가 우리 뇌에서 어떻게 표현되고 저장되는지를 최초로 밝혔다.”라고 전했는데요. “우리 뇌가 다양한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라고 전했습니다.
이 연구위원에 따르면 이번 연구는 타인에 대한 기억 및 연관 정보를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자폐와 같은 정신 질환을 이해하고 치료법을 제안하는 데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연구 결과는 네이처의 자매 학술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온라인에 게재되었습니다. (논문명: Dynamic and stable hippocampal representations of social identity and reward expectation support associative social memory in male m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