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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가의 옛 영웅

  • 기자명 Bryan Gardiner
  • 입력 2017.06.24 00:49
  • 수정 2017.11.14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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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버지니아 주 리치몬드에서 자라난 다른 많은 아이들처럼, 가이 스필러 역시 <더 세일러 밥 쇼>를 좋아했다. 이 프로그램은 현지 방송국에서 제작한 어린이 프로그램으로, 예술적인 능력이 뛰어난 선원과 그의 꼭두각시 인형들이 나온다. 좀 초현실적인 면모도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아무튼 50년이 지나, 반쯤 은퇴한 방송 프로듀서가 된 가이 스필러는 오리지널 녹화본을 재생할 수 있는 지구상 몇 안 남은 기계를 사용해서 이 방송의 오리지널 릴 투 릴 녹화본을 디지털화하고 있다. 스필러는 “내가 어렸을 적에 봤던 방송 원본을 입수해 보고, 거기 나온 노래와 내용을 떠올리는 것은 정말 멋진 체험이었다”고 회상한다. 오늘날은 사실상 모든 시대의 동영상을 유튜브에서 다 볼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텔레비전 방송의 모든 역사도 저장되어 있을 거라고 넘겨짚기 쉽다. 그러나 틀렸다. 세일러 밥, 하키 레스토랑, 자동차 광고 등 약 30년간 제작된 저예산 비디지털 텔레비전 영상들은 현재 영원히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스필러의 집은 버지니아 주 미들로시안이다. 이 곳에서 북쪽으로 136km를 달려가면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그 곳에는 미 의회 도서관의 패커드 시청각 보존 캠퍼스가 있다. 이 곳에는 40,000개가 넘는 5cm 4중 전신 릴이 보관되어 있다. 세일러 밥도 이런 저장매체에 기록되어 있다. 이 중 디지털화된 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컬러 TV로 방송된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취임식 장면, 마틴 루터 킹 2세 목사의 암살을 다룬 뉴스 영상처럼 중요한 것뿐이다.

이런 특수 도서관의 기록 보관인들은 바쁘다. 때문에 자신의 젊었을 적 활동모습을 후손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뉴스 캐스터들 같이 작은 손님들은 스필러 같은 사람들을 찾는다. 스필러는 5cm 릴을 원하는 어떤 동영상 포맷으로도 만들어준다. 그러나 스필러에게는 밀린 일이 많다. 앞서 말했던 도서관의 기록 보관인들은 미국의 역사 속 영상들을 디지털화할 수 있는 도구와 실력을 갖춘 극소수의 사람들이다. 스필러는 집에서 일하며, 1년에 100시간 분량의 5cm 4중 전신 비디오테이프를 디지털화한다.

스필러의 지하 스튜디오로 들어가 보면, 이 기술에 필요한 핵심 장비를 볼 수 있다. 그것은 무게 817kg, 크기는 장식장만한 RCA TR-70C 비디오테이프 레코더 2대다. 스필러에 따르면 이런 장르의 기계는 30년 전에 단종되었다. 현재 67세인 스필러는 사회생활 초기에 이 기계를 사용하고 수리했다. 현재까지 스필러는 흔히 <쿼드>라고 불리우는 이런 기계 8대를 폐기처분되기 전에 구출해냈다. “나는 방송 녹화 장비의 SPCA(동물 보호단체) 인 셈이다”

1956년에 처음 등장한 <쿼드>는 당대 가장 복잡한 기계 중 하나였다. 텔레비전 방송 사장 최초의 공식 테이프 기반 포맷이던 5cm 4중 전신 릴을 재생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기기들은 어떤 방송이라도 실시간 녹화 및 재생이 가능했다. <쿼드>의 내부에는 진공 펌프, 공기 압축기, 모터, 전해질 축전지, 저항기, 트랜지스터 등이 가득 차 있다.

스필러는 “이 기계가 <쿼드>라고 불리는 것은 화면을 분할하는 데 쓰이는 비디오 헤드가 4개이기 때문이다. 이 4개의 채널이 완벽히 조화를 맞춰 재생되지 않으면 영상에 문제가 생긴다”고 말한다.

쿼드가 발명되기 전, 텔레비전 방송국은 TV 모니터의 내용을 무비 카메라로 촬영하는 방식으로 방송을 저장해 왔다. 따라서 재방송을 하려면 이 필름을 현상해야 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방송국들은 여러 시간대에 맞춰 재방송을 동시에 할 수가 없었다. 쿼드는 상황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제어하기도 쉽고 기존의 장비들을 완전히 구식화 시켰다.

스필러가 사용하는 RCA는 2010년에 조지아 대학의 인적 끊긴 창고에서 발견한 것이다. 그 RCA는 무려 27년 동안이나 전원이 연결되지 않은 상태였다. 약 70개의 전해질 축전기를 새것으로 교체하고, 1주일 동안의 수리 과정을 거친 후에야 다시 사용할 수 있었다. 이 기계를 다시 사용하기 위한 준비 과정과 운용 과정을 보면, 왜 그와 같은 사람이 드문지를 알 수 있다. 스필러는 자신을 전자 기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에 비유하기도 한다.

가이드, 회전 롤러, 고정 헤드, 컨트롤 트랙 헤드 등으로 이루어진 테이프 통로를 청소하는 데 15분 이상이 소요된다. 그리고 이 작업은 녹화하기 전마다 반드시 해야 한다. 그리고 테이프를 밀어 넣으면, 끊임없이 노브를 계속 움직여 주고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최고의 화면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복잡한데도, 은퇴한 엔지니어인 스필러는 이 기계를 사랑한다. 특히 기술 발전의 속도가 너무 엄청나 수많은 기술이 버려지는 요즘 같은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는 1시간 분량을 디지털화하는데 수백 달러의 요금을 받는다.

상세 요금내역은 테이프에 따라 다르다. 그리고 그는 미 전국에서 자재를 끌어 모은다. “나는 이 기계들을 구해내고 있다. 텔레비전 방송 황금시대의 기록들을 보존하고 있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고 있다. 이 모든 일이 매우 만족스럽다.”
 


숫자로 본 RCA TR-70C

12 :
 녹화 중 실수를 막기 위한 경고등의 숫자
1,800 : 릴을 제외한 총중량
40 : 주제어판에 달려 있는 노브와 다이얼의 개수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편집부 / by Bryan Gardiner, photographs byMarius Bug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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