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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물화의 대가

[안희경의 식물과 사람]

  • 기자명 안희경 과학칼럼니스트
  • 입력 2022.12.0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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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색체 하나가 후손들에게 유전되는 양상. ‘재조합되지 않는 경우’ (왼쪽)와 ‘재조합되는 경우’ (오른쪽)의 두 가지 경우를 비교했다. 출처=필자 제공.
염색체 하나가 후손들에게 유전되는 양상. ‘재조합되지 않는 경우’ (왼쪽)와 ‘재조합되는 경우’ (오른쪽)의 두 가지 경우를 비교했다. 출처=필자 제공.

나는 부모님의 염색체를 절반씩 물려 받았다. 나의 동생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 남매는 아무리 비슷해도 똑같지 않다.

인간의 염색체는 총 46쌍이고 한 쪽 부모로부터 23개를 전달받는다. 부모님은 다시 조부모님으로부터 염색체를 물려받으셨으니, 엄마로부터 염색체를 물려받았어도 나는 할아버지의 염색체, 동생은 할머니의 염색체를 받았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만 생각해도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똑같은 염색체를 받게 될 가능성은 엄청나게 희박하다.

그런데 여기에 비밀이 한 가지 더 있다. 난 부모님으로부터 조부모님 중 한 분의 염색체를 온전히 받는 게 아니라, 두 분의 염색체가 섞인 새로운 염색체, 즉 ‘재조합’을 거친 염색체를 물려 받는다. 염색체의 DNA에는 여러 유전자의 정보가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결국, 새로 재조합된 염색체를 물려받는다는 것은 세상에 하나뿐인 독특한 생명이 된다는 뜻이다.

1만년 전의 사람들이 작물을 선택하는 과정에도 이런 재조합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들판이나 숲에 자라던 토마토 중에 조금 더 큰 토마토 씨를 모으고 다시 땅에 심어 더 커진 토마토를 선택하는 식으로 토마토 크기를 계속 키웠다.

토마토가 세대를 거칠 때마다 염색체는 새로 재조합 되고, 더 커진 토마토에는 과일 크기를 키우는 유전자가 점점 많아졌다. 사람들은 과일의 크기를 선택했다지만, 사실 이들은 과일 크기에 관한 유전자를 여러 개 선택하여 이어 붙이는 과정을 진행하고 있던 것이다.

문제는 염색체에는 서로 다른 기능을 하는 유전자 여러 개가 무작위로 배열이 되어 있다는 점이다. 재조합 과정은 유전자 여러 개가 포함된 DNA 조각이 서로 뒤바뀌는 과정이다.

그 결과 작물화와는 전혀 상관없는 유전자들이 작물화 유전자 옆에 위치해 있다는 이유로 작물화 유전자와 함께 선택되고 전해진다. 이런 유전자의 특성이 행선지가 비슷한 차를 얻어 타려는 히치하이커 같아서, 과학자들은 이 유전자를 '히치하이커 유전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1만년 전에는 이런 과정을 알 수 없었지만, 인류에게는 이제 모든 생물의 DNA를 가닥가닥 읽어낼 수 있는 기술이 생겼다. 유전을 매개하는 DNA 일체를 분석하기 때문에 전장유전체분석이라고도 부른다.

이를 통해 어떤 유전자가 어느 염색체에 있는지를 아는 것에서부터 이제는 작물의 품종 간 차이도 유전자 단위로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의식적으로 선택된 작물화 유전자 외에 무의식적으로 선택된 유전자도 알 수 있게 되었다.

페루와 에콰도르에서 작물화가 시작된 토마토는 오늘날 야생종보다 크기가 100배 정도 커졌다. 야생종은 자그마한 토마토 품종인 방울토마토보다도 훨씬 작다.

토마토의 크기와 직접 관련되어 있는 유전자는 전장유전체분석 전에도 이미 몇 개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유전체 분석 과정에서 크기와 관련된 유전자 하나가 과일 크기와는 상관없는 주변 유전자들과 함께 유전된다는 것이 알려졌다.

이 주변 유전자들은 과일의 크기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토마토의 맛을 바꿔 버렸다. 즉, 야생종 토마토에서 느낄 수 있는 향과 맛을 일반 토마토에서는 느낄 수 없게 되었다.

원하는 형태의 작물을 얻는 과정에서 선택되지 못한 유전자도 많다. 작물화 당시에는 그리 필요하지 않아 보였지만, 사실은 수확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되거나, 병저항성에 도움이 되는 유전자들이 대표적인 예다.

뿐만 아니라 하나의 품종을 계속 유지하는 과정에서 생긴 유해한 돌연변이가 세대를 거쳐 유지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품종을 유지하고자 다른 품종과의 교배를 하지 않기 때문에 돌연변이가 점차 축적되는 것이다. 여기에 생장에 영향을 미치는 돌연변이가 아니라면 농사를 통해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기 때문에 돌연변이가 보존되는 경향도 있다.

신석기 시대의 인류가 선택하고 키워낸 작물 덕분에 우리는 지금까지 정착 생활 형태를 바꾸지 않고 잘 살아왔다. 하지만 과학 기술이 발전하고, 작물에 대한 이해가 증가하면서, 조상들의 선택이 최선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똑같은 품종의 씨를 받아서 해마다 키우고, 다시 키우는 방식이 개체의 유전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알게 된 정보를 사용하여, 현대 사회에 더 잘 적응할 수 있는 제2, 제3의 작물화를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참고자료>

Singh, J., van der Knaap, E. (2022) Unintended consequences of plant domestication. Plant & Cell Physiology. 63(11): 1573–1583

Moyers, B.T., Morrell, P.L., McKay, J.K. (2018) Genetic costs of domestication and improvement. Journal of Heredity 109(2):103-116

Zhu, G., et al. (2018) Rewiring of the fruit metabolome in tomato breeding. Cell 172:249-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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