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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텃밭 가꾸기

  • 기자명 안희경 과학칼럼니스트
  • 입력 2022.10.04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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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10일, 스콧 켈리 (오른쪽)와 키엘 린드그렌 (왼쪽)이 우주정거장 (ISS)에서 재배한 적상추 'Outredgous' 품종을 시식하고 있다. 출처=NASA
2015년 8월 10일, 스콧 켈리 (오른쪽)와 키엘 린드그렌 (왼쪽)이 우주정거장 (ISS)에서 재배한 적상추 'Outredgous' 품종을 시식하고 있다. 출처=NASA

2015년 8월10일, 우주정거장에서는 스콧 켈리(위 사진 오른쪽)와 키엘 린드그렌 (사진 왼쪽)이 직접 재배한 적상추를 시식하는 자리가 있었다. 이전 해인 2014년에는 우주정거장에서 적상추를 키우기만 했다면, 이번에는 재배한 상추를 시식까지 한 것이다. 한 달 정도 키운 적상추는 매우 잘 자랐을 뿐 아니라, 우주정거장 직원들이 영양 성분도 풍부했다. 우주정거장에서 작물을 키우는 일명 ‘베지 (Veggie)’ 프로젝트는 이후 더욱 확대되어서, 지금까지 벼, 귀리, 밀, 보리, 옥수수, 완두콩, 오이, 유채, 고추에 봉선화와 해바라기 등 다양한 식물 종을 우주정거장에서 키워냈다

식물은 지구에 사는 다른 생물보다 중력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중력 방향으로 뿌리가 자라며, 중력 방향의 역방향으로 물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잎, 줄기 등의 각종 기관이 지구 맞춤형으로 진화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중력이 적거나 없는 상태에서 식물이 어떻게 자랄 지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우주정거장에서의 연구 덕분에 우리는 식물의 뿌리가 중력만으로 생장 방향이 결정되지 않으며, 중력이 미미해도 식물이 잘 자랄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주정거장에서 33일간 재배한 적상추 'Outredgous'. 출처=NASA
우주정거장에서 33일간 재배한 적상추 'Outredgous'. 출처=NASA

하지만 식물학자들 말고 식물이 무중력 상태에서 어떻게 자라는지 궁금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우주에서 식물을 키우는 인간을 위한 이유는 아무래도 언젠가 장기간 살게 될지도 모를 지구 밖 공간에서 안정적으로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서다. 영화 ‘마션’의 주인공 마크 와트니가 홀로 남겨진 화성에서 살아 남기 위해 감자를 키운 것처럼 말이다. 

화성의 표토는 현무암질로 양분이 적고 수분이 유지되지 못한다. 여기에 화성의 물은 염도가 높아서 농사에 사용되기 어렵다. 하지만 최근 화성과 비슷한 조건의 토양과 물로 식물을 키운 연구가 발표되었다. 이 연구는 파퓰러사이언스 기사로도 알려졌다. 알팔파는 화성과 비슷한 토양에서, 남세균으로 담수화한 물만으로도 잘 자랐다. 무엇보다 그렇게 키운 알팔파를 비료로 삼으면, 화성과 유사한 토양에서 순무, 상추 등도 잘 자랐다. 마크 와트니는 동료들이 남기고 간 인분으로 감자를 키웠지만, 이 연구는 냄새로 고생하지 않고, 또 온실에 불을 내지 않고도 감자를 키울 수 있음을 보였다.

화성에서처럼, 달에서도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1960년대에 진행되었던 아폴로 계획은 총 6대의 우주비행선을 달로 보냈다. 그 중 달 착륙에 성공한 아폴로 11호, 12호, 그리고 17호는 지구로 귀환하면서 달에서 지질 샘플을 가지고 돌아왔다. 달의 표토는 화성의 그것과는 또 달라서, 달 표면에 오래 있을수록 응집되어 물 흡수가 정말 어렵다. 식물학자들은 여기에 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식물 애기장대를 심었다. 그리고 그 연구 결과가 올해 발표되었다.

일단 달에서 채취한 시료에 애기장대 씨를 심고 물을 부었더니, 싹이 났다. 싹이 나는 것은 씨앗 내부에 물이 침투하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이니, 싹이 난 것 자체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떡잎이 나고 본잎이 나기 시작하고, 씨앗이 갖고 있던 양분이 고갈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싹은 났지만, 시일이 지날수록 달 시료에서 자라는 애기장대는 비실비실하게 자랐다. 그리고 건강한 애기장대와는 달리 확실히 각종 환경 스트레스, 특히 고농도의 이온에 의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처럼 보였다. 

모든 달 시료에서 식물의 생장이 더뎠지만, 특히 아폴로 11호의 시료에서 자란 애기장대가 가장 생장 상태가 좋지 못했다. 달의 곳곳에서 채취한 시료지만 11호의 시료는 비교적 표면 가까이에서, 그리고 17호는 더 안쪽에서 채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달 표면에 가까운 시료일수록 태양풍과 미세운석 등에 오래 노출되어서 활성 산소나 염도 등이 높을 수 있다. 화성의 표토는 식물이 잘 자라는 데 필요한 양분이 적었지만, 달의 표토에는 오히려 생장을 방해하는 물질이 포함되어 있었다.

우주에서, 혹은 우주와 유사한 조건을 지구에서 재현한 이들 연구를 가만히 살펴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지구에 살며 당연히 여겼던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우주에는 중력과 산소만 없는 게 아니라, 흙도 없다. 

지구 상의 거의 모든 생물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식물이 필요하고, 그 식물은 지구의 흙에서 번성해 왔다. 하지만 지구에 식물이 처음 등장한 때부터 아주 오랫동안 식물이 지구의 흙과 맺어온 관계가 달이나 화성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화성에서 알팔파를 키울 수 있다 하더라도, 지구에서 식물이 이루어 놓은 대지와의 관계가 화성에서 재현되기 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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