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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0년 전 '별의 지도'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다

히파르코스의 '천체목록'...지구~달 거리 최초 측정한 천문학자
"천체의 정확한 위치 고정해 기록하려는 최초의 시도"

  • 기자명 김윤경 기자
  • 입력 2022.10.24 10:48
  • 수정 2022.10.24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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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캐서린수도원에서 기증된 양피지. 오래된 글씨들을 트레이싱한 것을 노란색으로 강조했다. 출처=성경박물관.
성캐서린수도원에서 기증된 양피지. 오래된 글씨들을 트레이싱한 것을 노란색으로 강조했다. 출처=성경박물관.

그리스의 유명한 천문학자 히파르코스(Hipparchus)가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별들의 지도 일부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종교 문서 글자 밑에 겹쳐져 있는 채로.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연구팀은 지난 18일(현지시간) 국제 학술지 '천문학사 저널'(Journal for the History of Astronomy)에 게재한 논문에서 히파르코스가 제작한 '히파르코스 천체 목록'(Hipparchus Star Catalog) 가운데 일부를 발견, 최초로 공개했다.

기원전 2세기(B.C.190~120년) 활동한 것으로 알려진 히파르코스는 삼각법을 고안한 수학자이자 지구와 달의 거리를 계산한 천문학자였다. 그는 또한 세차운동(axial precession)의 일종인 춘분점 세차를 발견했다. 세차운동이란 천체의 자전축 방향이 중력으로 인해 서서히 연속적으로 변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는 기원전 130년 경 망원경도 없이 밤하늘 전체를 지도로 만들었다고 널리 믿어져 왔다. 망원경은 히파르코스가 천체 목록을 만든지 1400년이 지난 1608년이 되어서야 발명됐다.

그러니까 그가 양피지에 써서 만든 고대 천체 목록의 일부는 천문학자들이 2000년이 넘도록 찾아 헤맨, 희귀하고 귀중한 학술자료다. 

연구를 주도한 케임브리지대 피터 윌리엄스 박사는 "히파르코스의 천체 목록은 천체의 정확한 위치를 고정 좌표로 기록하려는 인류 최초의 시도였다"면서 "많은 고문서와 마찬가지로 어느 순간 사라진 뒤 오랜 세월 문헌 속 기록에서만 그 존재가 전해져 왔다"고 밝혔다. 4세기 후 프톨레마이오스가 천체에 대해 쓴 <알마게스트> 본문에서 (히파르코스의)천체 목록을 언급했기 때문에 그 존재를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천체 목록은 이집트 시나이 반도에 있는성 캐서린 수도원(Saint Catherine's Monastery)에 있었다. 양피지에 쓰인 천체 목록을 지워내고 그 위에 성서를 쓴 문서를 발견한 것이다. 

수도원은 고대 성서 중 하나인 '코덱스 클라이마시 레스크쿠스'(Codex Climaci Rescriptus)와 고대 문헌 146개를 지난 2012년 워싱턴 D.C.에 있는 성경 박물관에 기증했는데, 이는 팔림프세스트(Palimpsest) 형태였다. 팔림프세스트는 원래 기록했던 문자 등을 갈아내거나 씻어서 지운 다음에 다른 내용을 그 위에 엎어 기록한 양피지(parchment)를 말한다.

동물의 가죽으로 만드는 양피지는 얅게 가공돼 종이처럼 사용됐다. 만드는 것은 힘들지만 적절한 조건 하에선 수천년 간 보존될 수 있다. 다만 예리한 칼로 잉크를 긁어내기만 하더라도 내용이 쉽게 지워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재활용이 손쉬웠는데 1500년대 종이 생산이 보편화될 때까지 양피지가 사용됐다.  

출처=unsplash
출처=unsplash

윌리엄스 박사는 10년 전 학생들에게 이 원고들을 살펴보라는 과제를 내줬다. 그런데 그것을 훑어보던 한 학생이 뜻밖에도 천문학자 에라토스테네스가 그리스어로 썼던 구절을 발견했다.

2017년 이 페이지를 자세히 보기 위해 다중 스펙트럼 이미징 기술이 사용됐다. 각 페이지당 42장의 사진을 찍고 각각 다른 파장의 빛을 사용하면서 컴퓨터 알고리즘이 문헌 속 숨겨진 텍스트를 향상시키는 주파수 조합을 찾아냄으로써 긁어낸 문서를 해독할 수 있었다. 

코로나 보레아스 별자리의 길이와 너비를 도수로 나타낸 수치, 그리고 별자리의 가장 먼 모서리에 있는 별들의 좌표를 볼 수 있었던 것. 

오랜 수수께끼 중 하나도 풀렸다. 프톨레마이오스가 자신의 책을 쓸 때 히파르코스의 천체 목록 전체를 베낀 뒤 확장해서 썼는지, 아니면 프톨레마이오스가 스스로 측정을 하면서 단순히 히파르코스를 언급했는지가 가려진 것. 

연구팀은 히파르코스의 천체 목록 일부에서 네 개의 별자리를 찾을 수 있었고, 이들 항성의 위치가 프톨레마이오스의 목록과는 약간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다 베껴쓴 건 아니란 얘기다. 그런데 놀랍게도 히파르코스의 천체 목록이 더 정확하게 측정됐다. 

성 캐서린 수도원에서 기증된 고대 문헌 가운데 9개가 천문학적 소재를 다루고 있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연구팀은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등을 통해 이 자료 중 일부는 5~6세기에 기록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별의 기원에 대한 신화를 다루고 있는 에라토스테네스의 글, 시인 아타루스가 천체에 대해 기술한 <현상>(Phaenomena)의 일부 등이 발견된 것은 고무적이었다. 

윌리엄스 박사는 곧바로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의 과학사학자 빅토르 기셈버그에게 연락했고, 천체 목록 발견에 대한 논문이 쓰여지게 됐다.  

연구 저자들은 "이 새로운 증거는 현재까지 가장 권위적인 것이며, 히파르코스의 천체 목록 재건에 큰 진전을 가져올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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