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인 인구 고령화로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져 뇌 조직에 손상을 입는 뇌졸중 환자가 꾸준히 늘고 있어 정부가 급성 뇌졸중 치료제 확보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내에서 유일한 급성 뇌졸중 치료제인 정맥 내 혈전용해제(tPA) '액티라제'는 독일 베링거인겔하임이 단독 생산해 세계 각국에 공급하고 있다.
김태정 대한뇌졸중학회 홍보이사(서울대병원 중환자의학과 교수)는 "전 세계 (액티라제)물량은 정해져 있어 코로나19 백신처럼 어느 나라가 물량을 많이 확보하느냐에 따라 국민이 그만큼 치료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면서 "우선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할 것 같아 공문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액티라제는 2023년 초부터 전 세계적인 공급 부족이 예상된다. 학회는 국내의 경우 이르면 올해 12월부터 공급 부족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보고 최근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긴 공문을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보냈다.
액티라제는 뇌졸중의 일종으로 뇌혈관이 막히는 뇌경색이나 심근경색 환자들에게 응급상황에서 정맥에 투여하는 주사제다. 이 주사제는 매년 국내에서 8000~9000명, 많게는 1만명 정도의 환자에게 투여된다. 공급이 부족해지면 응급의료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특히 뇌졸중은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지거나에 상관 없이 발생 후 응급 치료를 잘 받지 못하면 목숨을 잃거나 반신마비, 언어장애, 의식장애 등 심각한 후유증이 남을 수 있다.
최근 세계적으로 정맥 내 혈전용해제 수요가 늘고 있는 가운데 액티라제를 생산하는 베링거인겔하임의 현지 생산 공정에 문제가 생겨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액티라제 생산공장은 세계에서 독일 한 곳 뿐이다.
액티라제 수요 증가의 주된 원인은 전 세계적인 고령화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김 교수는 "액티라제 수요 증가는 꾸준한 노인 인구 증가로 뇌졸중 환자 수가 증가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면서 "코로나19 감염으로 뇌졸중 환자가 증가할 가능성은 있지만, 그 이유 만으로 뇌졸중 환자가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볼 순 없다"고 짚었다.
박태환 서울의료원 뇌혈관센터 과장(대한뇌졸중학회 보험이사)도 "코로나19로 뇌졸중 환자가 더 늘어 (액티라제)수요가 증가했다는 자료는 없다"고 말했다.
유엔(UN)이 발표한 '세계인구 전망보고서'에 따르면, 65세 이상 세계 인구 비율은 2022년 10%로,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인 2019년 기준(9%)보다 1%포인트 늘었다. 특히 뇌졸중은 60대 이상 고령층에서 많이 발생한다. 뇌졸중 위험인자인 고혈압, 당뇨병, 이상지질혈증, 심장질환, 비만 등 대부분의 질환이 고령층에서 많이 발생하는 데다 고령층일수록 혈관 자체의 탄력이 떨어지고 모양이 변하는 등 퇴행성 변화가 오기 때문이다.
국내의 경우 액티라제를 대체할 치료제가 없어 정부가 치료제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을 총동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또 다른 정맥 내 혈전용해제 '메탈라제'는 임상시험을 거쳐 효능이 입증됐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허가되지 않았다. 다만 의료계에 따르면, 국내의 경우 빠르면 오는 2024년께 의료현장에서 사용될 수 있을 전망이다. 하지만 메탈라제 역시 베링거인겔하임이 생산하고 있어 향후 생산 공장에 문제가 생기면 이번처럼 공급 부족 사태를 우려해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학회는 액티라제 공급 부족 사태에 대비해 응급 상황이 아닌 일반 혈관 내 혈전 제거 시술의 경우 가능한 다른 약제를 사용하고, 급성기 뇌졸중 환자로 등록한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공급량 관리 시스템을 구축할 것을 정부에 제안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당장 공급이 부족한 상황은 아니다"면서 "추가로 모니터링하고 학회, 업계와 함께 어떻게 대응할지 논의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